하마비 11

전남 해남. 충의공 이유길 유허비. 해남 향토유적 제1호.

충의공 이유길 유허비 (忠毅公 李有吉 遺墟碑) 전남 해남군 향토유적 제1호. *유허비각 정면에 트럭이 주차되어 있어 측면에서 촬영하였음. *주소: 전남 해남군 삼산면 충리 366-7. 충의공 이유길(忠毅公 李有吉 : 1576-1619)은 해남군 삼산면 충리 출신 장군으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을 도와 명량싸움에서 크게 전공을 올려 선조(宣祖)임금으로부터 9품직과 충효(忠孝)라는 두 글자를 하사 받았다. 그 후 평안도(平安道) 영유(永柔) 현감으로 있을 때 명(明)나라의 파병 요청이 있어 강홍립(姜弘立)을 원수로 하고 김경서(金景瑞)와 함께 부장(副將)으로 출병하여 함길직도(直搗)의 적 소굴을 소탕하던 중 패하여 강홍립과 김경서는 항복을 하였으나 이유길 만은 휘하 장병을 거느리고 분전하..

문화재 탐방 2023.04.26

전남 신안. 지도향교(智島鄕校)

신안. 지도향교(智島鄕校)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1984.02.29. 지정) *소재지: 전남 신안군 지도읍 읍내리 112 (서촌길 54-11)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지도향교는 조선 후기 행정 개편으로 건양 원년(1896) 지도군을 새로 설치하면서 1군 1향교 원칙에 따라 지은 향교이다. 이후 1947∼1948년 명륜당을 다시 지었고, 1966년 대성전 수리, 1968년 명륜당을 수리하여 지금과 같은 규모를 갖추고 있다. 봉정산의 완만한 경사지를 2단으로 하여 앞쪽에 교육 공간을 두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

문화재 탐방 2022.04.22

전남 해남. 충의공 이유길 유허비(忠毅公 李有吉 遺墟碑)

충의공 이유길 유허비(忠毅公 李有吉 遺墟碑) 전남 해남군 향토유적 제1호. (2000년 10월 13일 지정) *주소: 전남 해남군 삼산면 충리 366-7. 이유길 유허비 안내문. 충의공 이유길(忠毅公 李有吉 : 1576-1619)은 해남군 삼산면 충리 출신 장군으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을 도와 명량싸움에서 크게 전공을 올려 선조(宣祖)임금으로부터 9품직과 충효(忠孝)라는 두 글자를 하사 받았다. 그 후 평안도(平安道) 영유(永柔) 현감으로 있을 때 명(明)나라의 파병 요청이 있어 강홍립(姜弘立)을 원수로 하고 김경서(金景瑞)와 함께 부장(副將)으로 출병하여 함길직도(直搗)의 적 소굴을 소탕하던 중 패하여 강홍립과 김경서는 항복을 하였으나 이유길 만은 휘하 장병을 거느리고 분전하던 중..

문화재 탐방 2022.03.11

전남 무안. 무안향교(務安鄕校)

무안향교(務安鄕校)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1985.02.25) *주소: 전남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 260-1.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태조 3년(1394)에 무안읍성의 남쪽 공수산(현재의 남산)에 세웠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성종 1년(1470)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된 것을 숙종 15년(1689)에 고쳤으며, 그 뒤에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현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에 점차적으로 지어진 것이며,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등이 있다. 경사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공간이 있어 전학후묘의 배..

문화재 탐방 2022.02.07

전북 남원. 남원향교(南原鄕校) (전북 유형문화재 제8호)

남원향교 홍살문. 남원향교 진강루(振綱樓)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 (1971.12.02. 지정) ​ ▶소재지: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길 43 (향교동 512) ​ 남원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향교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1971년 12월 2일 지정되었다. 남원향교는 조선 태종 때 성안 서쪽 골짜기에 처음 세웠다가 얼마 후 요천 건너편으로 옮겼는데, 요천이 범람할 때마다 학생들이 통학하기 어려워 세종 25년(1443)에 지금의 자리로 다시 이사했다고 전한다. 그 후 정유재란 때 향교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으나, 선조 32년(1599)에 지방의 유지 유인옥(柳仁沃)이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여러 성현과 유학자를 모셨으며, 조선왕조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나라에..

발길을 따라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