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함평. 신천강씨. 열녀각(信川康氏. 烈女閣)

백산(栢山) 2021. 5. 3. 09:00

신천강씨 열녀각(信川康氏 烈女閣)

 

 

제각 안에 있는 비석은 신천강씨 열녀비.

정유재란 때 왜병에게 두 팔이 잘리면서까지 남편의 죽음을 막으려했던 부인을 기리는 비석이다.

 

 

 

▶소재지: 전남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636-2 (산내길 511) *수벽사 옆.

 

 

 

신천강씨 열녀각(信川康氏 烈女閣)


신천강씨 열녀각은 해보면 상곡리 상모평 임천산(林泉山) 산기슭, 즉 상모평마을 우측 변두리에 있다. 이 열녀각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부군인 윤해(尹海 1541∼1597)가 왜병에게 살해되려고 하자 이를 막으려다 함께 처참한 죽음을 당한 신천강씨(信川康氏 ?∼1597)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812년(순조 12) 조정으로부터 명정을 받아 같은 해 후손들에 의하여 건립되어진 열녀각이다.

 

신천강씨(信川康氏 ?∼1597)는 파평윤씨 諱 윤관(尹瓘)의 16대손인 윤해(尹海)의 처이다. 정유재란 때 집안 사람들은 모두 왜적을 막으러 출전하였는데, 부군인 윤해는 이때 병을 얻어 고향에서 치료 중이었었다. 그런데 왜병이 해보면 상곡리까지 침입하게 되자 신천강씨와 윤해는 이들의 갖은 악행을 피하고자 지금의 상곡 화수산(花樹山)으로 피난하다 왜적에게 발각이 되어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다.

 

이에 강씨 부인은 겁에 질려 궁리 끝에 은쟁반과 비단 2필을 손에 들어 보이며 목숨만을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였으므로 간신히 그 죽음의 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강씨 부인과 윤해는 또 다시 왜적에게 발각되었고, 왜적의 칼날이 남편 윤해를 내리치려고 하자 강씨 부인이 두 팔로서 막고자 하였으나 이내 그녀의 양팔은 그 칼날에 잘려 떨어지고 남편 윤해 또한 왜적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후에 강씨 부인의 열행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12년(순조 12)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정원용(鄭元容)의 기문(記文)을 받아 열녀각을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이 열녀각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홍살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열녀각 앞 좌측에는 높이 118㎝, 폭 52㎝, 두께 15㎝ 크기의 <충노도생비(忠奴道生碑) 충비사월비(忠婢四月碑)> 1기가 있는데, 이는 주인인 윤해와 그의 부인 신천강씨가 죽게되자, 그들의 어린 자식인 윤성립(尹誠立)과 윤정립(尹挺立)를 보살펴 길러준 은덕을 기념하기 위해 후일 문중에서 건립하였던 비이다.

 

 

- 웹사이트 -

 

 

열녀려절교위충좌위우부장윤해처의인신천강씨지문.
(烈女勵節校尉忠佐衛右部將尹海妻宜人信川康氏門)

 

 

열부강씨 정려기

(烈婦康氏 旌閭記)

 

 

열녀각의 대들보.

 

 

용이 여의주를 물고있는 열녀각 처마.

 

 

신천강씨 열녀각 앞에 충노 도생비와 충비 사월비가 비석 하나에 세워져 있다.

 

 

충노(忠奴) 도생비 & 충비(忠婢) 사월비.

 

노비부부인 도생과 사월은 신천강씨 부부가 죽자, 주인의 어린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과거에 급제시켰다고 한다. 이후 그 아들이 노비부부의 비(碑)를 세우라고 유언을 남겼고, 지금까지 파평윤씨 문중은 노비에게 제를 올린다.

 

 

신천강씨 열녀각과 수벽사, 그리고 임천정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파평윤씨 기념비들.

 

 

 

 

실록비(實錄碑)

 

파평윤씨 한림공파 종회에서 세웠다.

 

 

유인함평이씨열행비.

 

 

선전관 파평윤공유달유허비.

 

 

 

 

*다녀온 날: 202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