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용산재(龍山齋). 용산단(龍山壇)
*소재지: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신숭겸로 226.
(지번) 목사동면 구룡리 180.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 마을로 들어서면 고려건국 당시 왕건의 죽음을 대신한 의리의 사나이요 충신인 신숭겸(申崇謙) 장군을 모신 용산재가 있는데 왕건은 신숭겸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지사사(智妙寺)를 세워 명복을 빌게 했던 고려 개국공신 중에 한 사람이다. 고려 건국 이후 장군은 곡성의 성황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신숭겸(?~ 927. 태조 10)은 처음 이름은 능산(能山)이었으며 휘(諱)는 숭겸이요, 시효는 장절공이다. 공의 선대는 전라도 곡성사람으로, 뒤에 평산으로 관향을 받았다. 태어나면서 몸이 장대하고 무용이 있었다.
918년 6월에 장군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 4명은 은밀히 모의하여 궁예왕의 포악성에 반기를 들어 궁예를 폐위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였다.
927년(태조10년)에 견훤 군사가 신라를 침공하여 항복을 받은 후, 노략질과 갖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평소 동맹관계인 신라를 돕고자 정예 5,000기병을 이끌고 공산의 동수(桐藪)에서 기다렸다.
신라를 침공하여 신라의 경애왕을 도륙하고 평정한 후 사기충천하여 회군하는 견훤군을 만난 고려 군사들은 노독과 장기간 강행군으로 지쳐, 싸웠으나 매복된 견훤군사에 포위되어 전멸 지경에 이르러, 왕건은 신장군과 용모, 위용이 닮았으므로 신장군이 어의(御衣)와 어차(御車)로 변장하고, 왕건을 피신시킨 후 김락 부장과 함께 독전하다가 지금의 파군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를 기리는 고려가로 1120년 예종임금이 서경에 행차하였을 때 팔관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태조 왕건을 구출하고 전사한 개국공신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 두 장수를 추모하는 인형극을 보고 지은 詩가 전하고 있다.
- 웹사이트 -
구룡문(九龍門) 외삼문.
용산단 중건 방명비.
용산재.
진덕재.
모충재.
용산재.
용산재 판액.
충절문(忠節門)
용산재 안내판.
충절문.
용산단과 유허비각.
유허비각.
고려태사 장절 신공 유허비.
고려태사 장절 신공 유허비.
고려태사 장절 신공 유허비.
용산단.
고려태사 장절 신공 개국공신단.
용산단 & 유허비각.
화장실과 고직사. 그리고 전사청이 보인다.
화장실.
고직사.
전사청.
전사청.
전사청 현판.
장절공 신숭겸 장군 동상.
*위 동상 사진은 빌려 왔음.
*본 재각은 평산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다녀온 날: 2022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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