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북 고창. 문화류씨 정려(文化柳氏 旌閭)

백산(栢山) 2022. 11. 30. 06:00

조응두 처 문화류씨 정려

趙應斗 妻 文化柳氏 旌閭.

 

*이 정려는 마을로 통하는 외딴 길목에 앞으로는 논두렁으로 찾는 이가 없어

외로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단청도 되지 않은 단백한 정려이다.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220 (월암길 20-1)

 

 

직산 조응두(趙應斗)의 처 문화류씨는 사용(司勇) 류대기(柳大器)의 딸이다.

정유재란에 부부가 함께 산곡에 숨어 있다가 남편이 왜적에 쫓겨 달아나자,

문화류씨가 그 뒤를 따르다가 왜적에게 붙잡혔다.

 

왜적이 문화류씨를 겁탈하려 하자 이에 응하지 않고 끝내 절사(節死)하였다.

 

조정은 이 사실을 알고 정려를 명했으며 삼강행실(三綱行實)에 실리었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기문(記文)을 찬()했다.

 

정려는 돌담을 둘러 구획한 대지에 원형주초를 하고 두리기둥을 세워 창방에 결구하였다.

정면 1, 측면 1칸에 팔작지붕이다.

 

현판에는

열녀 학생직산 조응두 처 문화류씨지려 현종신해명정

(烈女 学生稷山 趙應斗 妻 文化柳氏之閭 顯宗辛亥命旌)이라 쓰여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자는 전쟁터에 나가 싸워야 했고, 집에 남아 있는 부녀자나 노약자

역시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당하게 마련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여자가 외적에게 능욕을 당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문화류씨처럼 절개를 지키고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후세에 귀감이 된 경우도 많았음을 알게 해준다.

 

 

- 웹사이트 -

 

 

*참고로 직산조씨(稷山趙氏)는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백제의 개국공신이라 전하는 조성(趙成)이다.

 

 

열부 문화류씨 정려비.

 

위는 열녀 학생 직산 조응두 처 문화류씨지려 현종 신해 명정.

아래는 열부 문화류씨 정려비.

 

열부 문화류씨 정려비.

 

열녀 학생 직산 조응두 처 문화류씨지려 현종 신해 명정.

 

정려 내부.

 

열부 류씨 정려 중수기.

 

정려비 측면.

 

정려비 뒷면.

 

비각 측면에서...

 

정려.

 

마을로 통하는 외딴 길목에 자리한 문화류씨 정려.

 

비각에서 바라본 논두렁.

 

이곳에서 월암서원이 바라 보인다.

 

 

 

*다녀온 날: 2022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