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유적지

전남 무안.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김응문 일가 현창비.

백산(栢山) 2023. 6. 19. 05:00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현창비.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 입구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일가의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

 

 

*소재지: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265 (차모길 12)

 

 

 

*김응문 일대기.

 

김응문 일가는 1894년 당시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와 다산리 차뫼마을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김응문의 아버지는 광수(光綬)로 그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창구(昌九), 영구(永九), 학구(學九), 덕구(德九)였다. 김응문은 맏아들로 1849(헌종 15)에 태어났다. 응문은 이고, 창구가 본 이름이다. 그의 맏아들 우신(禹信) 가 여정(汝正)으로 1867(고종 4)에 태어났다.

 

김창구의 동생 이름은 영구이고, 는 효문(孝文)이다. 1851(철종 2)에 태어났으며,

1894 12 12일 처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막내 동생인 덕구는 가 자문(子文)이다.

1868(고종 5) 태어나서 김응문과 같은 날인 1894 12 9일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신(禹信) 1894 12 9일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주김씨 에서는 창구와 그의 아들 우신, 영구와 덕구 등 4명이나 이 지역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김응문은 배상옥과 친교가 두터워 일찍 동학에 입도하여 몽탄면의 접주가 되었다고 하였다.

 

김응문(金應文)은 본관이 나주(羅州)이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 출신으로 무안 대접주 배상옥(裵相玉)과 친교가 두터웠다. 그는 몽탄 일대의 접주로 자기 집에서 각종 병기를 만들었으며 많은 군자금을 모아 무안 농민군의 선봉장으로 활약했었다.

 

함평 고막원 전투에서 패배하여 군대를 해산하고 집에 돌아온 응문은 일본 헌병대의 체포령에 시달려 일시 몸을 피하고 함평군 엄다면 별뫼마을에 숨어 있다가 거기에서 체포되어 무안으로 압송되어 갑오년 12 8일에 처형되었는데 불로 태워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뒷날 이 마을의 김본형(金本衡)씨가 김응문의 집터를 사서 새로 성주하려고 집터를 다듬던 중에 엽전 백 냥과 화살촉· · · 탄환 등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 웹사이트 -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현창비.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현창비 뒷면.

 

 

조그마한 독 하나를 세우며, 기념비.

 

 

김응문 일가 현창비 건립 추진 위원회 임원진 명단.

 

 

건너편으로 김응문 선생 생가가 보인다 (푸른나무가 서있는 집)

 

 

현창비 옆에 커다란 노거수(보호수)가 현창비를 지켜주고 있다.

 

 

보호수 안내석.

 

 

김응문 선생 생가.

 

 

김응문 선생 생가 철대문.

 

 

생가에 들어서면 마당이 넓고 본채와 사랑채 등으로 구분된다.

 

 

 

 

앞마당에 각종 화초가 심어져 있다.

 

 

이곳에서 무기를 만든 것으로 사료된다.

 

 

차뫼경로당.

 

 

경로당 앞에 '동학혁명 투사현창비'가 세워져 있다.

 

 

동학혁명 투사현창비 뒷면.

 

 

 

*2023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