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유적지

전북 김제. 학수재(위령각) 김덕명 장군 추모비.

백산(栢山) 2022. 12. 23. 05:00

학수재 입구.

학수재를 영락회 회원들이 관리하고 있다.


학수재 위령각(鶴首齋 慰靈閣)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원평로 27 (원평리 180-2)


학수재(영락회) 위령각은 금산면 출신으로 동학농민혁명 대접주인 김덕명 장군과 원평장터에서 기미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9명의 애국지사들과 광복군 제1지대장으로 활약한 이종희 장군, 6.25 전쟁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한 안영권 하사 등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치신 애국지사들의 우국충정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재각과 제단이다.

한편, 학수재 영락회 회원들은 현충시설로 지정된 김제 금산면 출신 애국지사들의 위패를 모신 위령각과 이종희 장군 추모비를 보호·관리하며 매년 10월 15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동학혁명의 주역 김덕명 장군 안내판.

학수재로 오르는 52계단 왼쪽으로
"동학혁명의 주역 김덕명"을 소개하는 안내판입니다.

동학농민혁명 5대 접주의 한 분이 김덕명 장군으로
김덕명 장군은 의병가문으로 유명한 언양김씨 후손입니다.

학수재 정문.

학수재.

관리사.

우측 비석은 학수재 위령각 조경 헌수자 명단과
이 지역을 사랑하신 분들의 공적비(중).
맨 왼쪽에 있는 비석 글씨 "향토 사학가 최순식 선생 공적비"

학수재 동산의 시비.

조무산鳥舞山 푸른 자락 땡메산 마루
향토의 전설을 빗돌에 새기고
선열의 위령각에 합장을 한다.

정산, 최봉국 글.

가신 님 영전에 시비.

위령각.

구미란 전투에서 전사한 무명 동학농민혁명군이 묻혀 있는 곳으로 알려진 작은 동산인 이곳에
농민군의 영령을 위로하고 '김덕명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에 의해 1987년 건립되었다.

동학농민혁명 및 독립애국지사뿐만 아니라
이 지역 명망가들의 위패도 위령각에 모셔 원평전투가 일어난 11월 25일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위령각 제단.


좌측 김덕명 장군, 중앙 이종희 장군.
아래줄은 이 지역 애국지사와 명망가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본 사진은 위령각이 잠겨 있어 웹사이트에서 빌려왔음.

애국지사 남정 이종희 장군 추모비.

애국지사 남정 이종희 장군 추모비 및 위령각.

애국지사 용계 김덕명 장군 추모비.

동학혁명의 주역 김덕명 장군 안내문.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격전지 금구와 김덕명 장군.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는 옛 금구현 원평(院坪)으로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봉준(全琫準)[1855~1895]과 김덕명(金德明)[1845~1895]이 이끈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이자, 원평집회와 최후의 결전이라 할 수 있는 원평·구미란(龜尾卵) 전투가 벌어진 동학농민운동사의 중요 무대이다.

금구 출신의 김덕명 장군은 당시 동학 남접으로 전봉준과 함께 가장 치열하게 당대를 움직였던 중심인물로 평가된다.


[동학농민운동의 씨앗이 싹튼 김제 원평장터]

5일장이 서는 김제 원평장터는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없던 조선시대에 보행 교통의 중심지로서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였다. 전라도 각 고을의 동학 접주들이 모임을 가졌고, 전라도 대도회소(大都會所)가 있어서 1893년 3월 금구원평취회가 열렸으며, 동학농민군이 전주(全州) 입성 하루 전에 선전관 이주호(李柱鎬) 외 4명을 참수하여 혁명의 결연한 의지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오늘날의 김제 지역에는 김덕명을 비롯해 영호대접주인 김인배(金仁培)와 김사엽(金士曄), 김봉득(金鳳得), 김봉년(金奉年) 등의 지도자가 있었고, 금구에서 송태섭· 유공만· 김인배, 김제에서 조익재· 황경삼, 만경에서 진우범이 농민군을 이끌었다. 김덕명은 처음 백산에서 농민군 대회를 열었을 때 총참모로 추대되었는데, 김덕명포에서는 2,0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김덕명 장군 생가터는 모 식품회사 건물이 들어서 흔적조차 찾아볼 길이 없음.

애국지사 용계 김덕명 장군 추모비 & 애국지사 남정 이종희 장군 추모비.



*다녀온 날: 2022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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