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나무위키에서 빌려 옴.
*7개 국어에 능통했던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
1417년(태종17년) ~ 1475(성종6년) (본관: 고령)
보통 4-5개의 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도 천재라고 극찬을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7개 국어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바로 조선조에 영의정을 지낸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가 주인공이다.
정치적인 얘기는 접어 두고 학자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는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한국 최초의 일본 관련 책,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 등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설총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 까지도 터득했다고 한다.
명문가답게, 일제하에서 독립투쟁의 주역들인 단재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이 그의 후손들이다.
*조선왕조 최연소 급제자(만14세) 이건창(李建昌)
(1852년 5월 26일 ~ 1898년 6월 18일)
조선시대 20세 미만 급제자는 30명이며 그 중 최연소 급제자는
1866년(고종30년) 강화도 별시문과에서 6명 중 5등으로 뽑힌
만14세의 이건창(李建昌: 본관: 전주)이다.
이건창(李建昌)은 판서 이시원의 손자로 강화출생이며 5세에 문장을
구사할 만큼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조정에서도
너무 일찍 급제하였다. 하여 4년 뒤인 만18세가 되어서야 홍문관직의
벼슬을 주었다.
그러나 이건창의 벼슬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천성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으로
암행어사 때는 충청감사 조병식의 비리를 낱낱이 들쳐 내다가 도리어
모함을 받고 1년여의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저술에 몰두하여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기술한
[당의통략]을 저술하는 등 조선말기의 大文章家로 손색이 없었다.
이건창의 강화학파는 이회영, 이상룡 등과도 연관이 있어 독립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니, 그의 천재성이 헛되이 쓰여지지는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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