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유적지 34

전북 정읍.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사적 제295호. 전북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3 (하학리 산 3-5)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황토현 전적지는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로서 1894년(갑오년) 동학혁명운동 당시 농민군이 관군과의 첫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 싸움터이다. 조선 고종 31년 정월(양 2. 17)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고부관아를 점령하여 학정을 일삼던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 해 백산에서 다시 봉기한 농민군은 이를 토벌하기 위해 이곳 황토현에 진을 치고 있던 전라감영의 관군을 4월 7일(양 5.11) 새벽, 기습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이곳에서의 승리는 농민군의 사기를 크게 높여주었고 당시 농민들이 외쳤던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

동학 유적지 2020.03.14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다녀온 날: 2019년 11월 10일.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하학리 11-1)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은 동학농민군의 최초 전승지인 황토현전적지(사적 295호)내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에서 2004년 5월 11일 개관한 기념관이다. 전라북도청에서 관리사업소를 두고 관리·운영해 오다, 2011년 1월부터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1894년 반부패·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봉기한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수만의 無名동학농민군이 전주감영에서 파견한 관군을 크게 이긴 최초의 전승지로, 향후 고부민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성지로 이를 추모 및 기념하기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역사상 최초의 농민..

동학 유적지 2020.03.13

전북 정읍.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 사발통문 집 & 동학혁명 모의탑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대뫼마을 녹두회관으로 가면 무명동학농민혁명 위령탑이 있으며, 뒤편으로는 대뫼마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이 2층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대뫼마을의 원래 명칭은 죽산마을이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산의 모양이 돛단배와 같다고 하여 주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618 (덕신강길 256-3) 주소 (56152) 전북 정읍시 고부면 덕신강길 256-3 (신중리 618) 전화 / 관리기관 063-534-1967 / 대뫼 녹두회관. 입장료 / 휴무일 없음 / 연중무휴. 정읍시를 중심으로 관심 있는 지역인사를 참여시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4327년(1994)구성하고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발통문 작성지인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新中理) 주산(舟山)마을에..

동학 유적지 2020.03.12

전북 고창.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전북 고창.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전북 유형문화재 제129호. (2014년 10월 31일 지정) *주소: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운대로 308 (구암리 589-2)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기념탑. 이 곳에서는 동학농민의 뜨거운 땀방울이 느껴지는 동학농민군의 훈련장이 보이고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운동으로 민족·민중 운동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 갑오 동학농민혁명의 제1차 봉기지로서 만천하에 창의 포고문을 선포한 발상지의 상징인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이 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의 전체적인 모형은 농민혁명의 강렬한 의지와 열성의 횃불을 형상화 하였고 중앙 부조 조각은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대의를 위해 만방에 봉기할 것을 호소하고 포고문 선포의 역사적인 모습을 표현하여 그 당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동학 유적지 2019.11.11

전북 고창. 무장읍성(茂長邑城)

고창. 무장읍성 전경. 사적 제346호 (1991년 2월 26일 지정) 다녀온 날: 2019년 4월 28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309 (무장읍성길 45) "동학농민군의 무장읍성 입성" 안내판. 남문(진무루)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남문(진무루) 쪽 성곽.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년 2월 21일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데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144,949.4m²(43,847평)이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그동안 흙으로만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던 이 성이 공사 때에 성벽 동쪽 끝..

동학 유적지 2019.11.04

전북 정읍. 전봉준장군 단소

전봉준장군 단소 표지석. 전북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산 10-3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 단소 안내문.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에 위치하고 있는 전봉준 장군 단소는 전봉준 유적지(구, 전봉준 선생 고택지)에서 약 500m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있다. 1954년 천안전씨 문중에서 제단과 비석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1994년부터 연차적으로 정비하여 유해가 없는 虛墓(허묘)를 조성하고, 도 세웠다. 동학농민운동지도자인 전봉준은 1895년 3월 서울에서 처형되어 끝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비석에는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지단(甲午民主倡義統首天安全公琫準之壇)'이라고 새겨져 있다. 전봉준장군 단소 전경. - 전봉준(全琫準): 1855(철종 6)∼1895(고종 32).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

동학 유적지 2019.05.15

전북 정읍. 전봉준 유적(全琫準 遺蹟)

전봉준 선생 고가 전경. 사적 제293호 (1981.11.28 지정) *주소: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458-1 (조소1길 20) *과거에는 전봉준선생 고택으로 불렸으나 2011.07.28 이후부터는 정읍 전봉준 유적으로 개칭되어 오고 있다. 정읍 전봉준 유적 안내문.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1855-1895)이 살던 집이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전봉준은 조선 고종 27년(1890)에 동학에 몸을 담아, 동학 제2대 교주인 최시형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로 임명되었다. 그는 관리들의 횡포에 맞서 농민과 동학교도들을 조직해 동학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옛집은 조선 고종 15년(1878)에 세워졌다. 앞면 4칸·옆면 1칸의 초가집으로 안채가 구성된 남향집이다. 동쪽부터 부엌·큰방·웃방·..

동학 유적지 2019.05.13

전북 고창. 전봉준 장군 생가터

전봉준 장군 생가터 전경.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59 (당촌길 41-8)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생가터 안내판. - 전봉준(全琫準): 1855(철종 6)∼1895(고종 32).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 전봉준 장군의 초명은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 아버지 전창혁은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 달 만에 죽음을 당하였다. 뒷날 그가 사회개혁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전봉준 장군은 반외세를 외치며 거병(擧兵)했으나 밀고를 당해 1895년 4월 41세에 서울에서 교수형에 처..

동학 유적지 2019.04.19

전남 장흥.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남 장흥읍 읍성로 2 (남외리 164-11) 장흥 석대 일대는, 정읍 황토현, 공주 우금치, 장성 황룡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4대 전적지이며, 대규모 농민군이 참여한 최후, 최대의 격전지이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9년에 이어 국가지정사적(제498호)으로 지정되었다. 전시실에는 동학 관련 각종 책자 및 고문서를 전시하고 있으며, 동학 농민군 및 일본군이 사용했던 무기류도 볼 수 있다. 특히 '세계 속의 동학 농민 혁명' '최후의 항쟁, 석대들 전투' 등의 코너에서는 입체감 있는 영상물을 통해 관람자가 마치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당시 활약했던 장태장군 이방언 및 이인환, 이사경, 구교철, 문남택 대접주를 비롯하여 소년 뱃사공..

동학 유적지 2019.02.11

전남 장흥. 영회당(永懷堂)

장흥. 영회당(永懷堂) 전남 장흥읍 예양리 78 (예양4길 17-9) 영회당(永懷堂)은 동학농민 봉기 당시 장녕성 전투에서 희생당한 장졸들을 추모하기 위해 나중에 건립된 사당으로 12월 20일 장흥에 들어온 우선봉장 이두황이 수성장졸들에 대한 포상을 한데 이어 어사 이승욱이 임금에게 주상해 순절단을 1898년 북문 밖에 건립했었다고 한다. - 웹사이트 - 영회당 현판과 주련. 영회당 안내문. 1894년 12월 5일 동학농민혁명군이 장흥읍성을 침공하자 당시 장흥부사 박헌양 외 95인의 관군이 이를 방어하다 순절하였다. 후손들이 이를 추모하고자 세운 사우다. 뒤편에 전라도어사 이승욱이 1899(광서 20)년 순절비를 세우고 순무사 이도재가 "영회"라는 당호를 내렸다. 장흥의 다른 동학유적과 함께 "장흥석대들..

동학 유적지 2019.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