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유적지 34

전남 나주. 의열각(義烈閣)

의열각(義烈閣)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전남 나주시 과원동 121-10. (나주목문화관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나주는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할 당시, 수성군을 조직하여 농민군의 공격에 저항했다. 2차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했을 때는 이를 토벌하기 위한 호남초토영(湖南招討營)이 설치되어 강진, 장흥, 영암, 무안까지 농민군을 진압하였다. 당시 나동환은 동학농민운동 접주로 참여하였다. 그가 관군과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아내 진주 정씨의 친정인 함평군의 다라실이라는 곳으로 피신했을 때 심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남편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고 죽임을 당했는데 이런 그녀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에 의해 의적비가 세워졌다. - 나주읍성 - 의열각 현판. 이조참판나주나공동환의적비. 吏曹參判羅州羅公東煥義蹟碑. 효열부진주정..

동학 유적지 2016.09.07

전남 장성. 황룡 전적(黃龍 戰蹟)

장성 황룡 전적 기념탑. 국가사적 제406호. 1998년 06월 10일 지정.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 356번지. 잘못된 정치와 행정을 일삼던 벼슬아치를 나무라며 시작한 동학농민운동의 투쟁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으로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계기가 된 황룡전투의 전적지이다. 1894년(고종 31년) 4월 동학농민군은 전주 점령 계획을 세우고 가장 좋은 장소로 황룡을 선택했다. 총알을 막을 수 있도록 대나무를 원통모양으로 엮어 만든 장태라는 신무기를 이용하여 동학농민군은 이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주를 점령하였다. 1994∼97년 장성군에서 이곳에 승전기념공원을 비롯해 여러 시설물을 갖추어 놓았다. 주위 경관도 어울리게 꾸미고 있으며, 근처에 경군대장이었던 이학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의비..

동학 유적지 2016.04.23

전남 장흥. 동학농민 혁명 기념탑

장흥 석대들 전투를 기념하는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탑 장흥의 이방언장군은 전봉준의 2차 기포결정에 따라 5천여 명의 농민군을 인솔해 장흥읍으로 진출한다. 이방언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은 전봉준과 함께 북진해 공주 우금치 전투 등에 참여한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장흥농민군은 장흥 석대들에서 최후의 일전을 펼쳤던 곳이다. - 출처 / 웹사이트 - 동학농민혁명기념탑 전문. 장흥농민군을 기리는 노래. 일천구백구십일년 봄. 고 은. * 글: 송기숙. * 탑명: 서희환.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탑 건립위원회. 송기숙의 소설 의 최후 격전지 안내문. 동학루(東學樓) "동학농민전쟁 기념탑" 탑문. 신념의 강자 김준배 열사 추모비. 탐방: 2016년 1월 31일.

동학 유적지 2016.02.27

전남 나주. 서성문(영금문)

나주 서성문(영금문) 전남 나주시 서내동 118. 서성문(西城門)은 영금문((映錦門)이라고도 불리며 2011년도에 복원한 나주읍성의 서쪽 성문으로 구한말(1894) 동학농민군이 나주를 공격할 때 공략대상이기도 하였으며,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전봉준이 서성문(西城門)으로 찾아와 당시 나주목사였던 민종렬(閔種烈)과 협상을 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영금문((映錦門)은 2007년 발굴조사 결과 지하에 유적이 잘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문헌에 주로 서성문(西城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지만 1815년에 편찬된 것으로 전하는 나주목여지승람에 동남북 삼문에는 편액이 없으며 서문에만 영금문((映錦門)이라는 편액이 있다는 기록에 따라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에서 영금문((映錦門) 편액을 걸었다 한다. - 출처 / 웹사이트..

동학 유적지 201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