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조씨 9

전남 영암. 전남 민속문화재 제35호. 조종수 가옥

창녕조씨. 조종수 가옥(曺鐘洙 家屋)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35호. (2001. 06. 05. 지정)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31 (구림로 107)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중의 종가(宗家)로 원래는 의병장인 육우당(六友堂) 박흡(朴洽)의 탯자리로 전한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대농의 집으로서 초가 5칸의 문간채와 사당을 갖추었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만 남아있고 옛 문간채 자리에는 새로 지은 부속채와 창고 건물이 앞에 위치하고 있다. 안채는 부엌과 출입문의 일부를 개조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안채의 뒤편으로 배롱나무와 크게 자란 소나무들로 잘 가꾸어진 작은 동산이 있으며, 안채는 이 작은 동산을 등지고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앞면 5칸·옆면 1칸 규모로 네면을 퇴칸으로 ..

문화재 탐방 2023.03.22

전남 영암. 창녕조씨. 서호사(西湖祠) & 총취정(叢翠亭)

서호사(西湖祠) *주소: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31번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서구림리(西鳩林里) 남송(南松)마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첨추를 지냈던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 1580 선조 13∼1663 현종 4)을 기리는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중 사우인 서호사(西湖祠)의 강당 총취정(叢翠亭)은 1943년 그의 후손들이 건립했으나 6.25때 무너져 1985년에 다시 건립했다. 골기와 팔작지붕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재실형이다. 주변은 외삼문과 좌측에 사당에 온갖 정원수로 기품 있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러나 원래는 조행립(曺行立)이 지어 모일 취, 취정(聚亭)이었던 것을 중수한 것으로 소나무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세한(歲寒)의 뜻을 기렸던 것으로 400여 년의 전..

발길을 따라 2023.03.20

전남 영암. 창녕조씨. 영모재(永慕齋)

창녕조씨.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에 있는 창녕조씨 문중에서 세운 재각이다.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 218-1 (정족길 14) 영모재(永慕齋)는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 정족마을의 입구에 있으며, 재각 뒤로는 창녕조씨 문중의 선산이 있다. 1921년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중에서 세운 재각으로 팔작지붕 형태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매년 4월 첫째 주 토요일에 문중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뒤편에 위치한 창녕조씨 문중의 선산과 함께 영모재는 영암에 거주하는 창녕조씨들의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해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모재 삼문. 영모재(永慕齋) *영모재는 현판이 없다...

발길을 따라 2021.10.22

전남 영암. 창녕조씨. 낭주사(朗州祠)

영암. 낭주사(朗州祠) *소재지: 전남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 112-1 (남문로 22-10) 낭주사(朗州祠)에는 남은(南隱)처사 조세풍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창녕조씨 세보에 의하면 창녕조씨는 고려시대에 8대에 걸쳐(8세 延祐~15세 自奇) 문하평장사를 배출하였는데, 이는 광산김씨의 10대 평장사와 함께 기록적인 일이다. 그 외 좌정승을 지낸 양평군 익청(益淸)을 비롯하여 문하시중을 지낸 민수(敏修) 등 많은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부제학을 지낸 상치(尙治), 공조판서를 지낸 비형(備衡), 영의정을 지낸 석문(錫文), 예조참판 효문(孝門), 대사헌을 지내고 주역에 조예가 깊었던 숙기(淑沂), 강원도관찰사 문수(文秀), 예조참판을 역임한 한영(漢英), 왜구와 야인 토벌에 공을 세워 병조판서·우찬성..

발길을 따라 2021.10.20

전남 영암. 창녕조씨. 조종수 가옥 (전남 민속문화재 제35호)

창녕조씨. 조종수 가옥(曺鐘洙 家屋)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35호. (2001. 06. 05. 지정)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31 (구림로 107)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중의 종가(宗家)로 원래는 의병장인 육우당(六友堂) 박흡(朴洽)의 탯자리로 전한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대농의 집으로서 초가 5칸의 문간채와 사당을 갖추었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만 남아있고 옛 문간채 자리에는 새로 지은 부속채와 창고 건물이 앞에 위치하고 있다. 안채는 부엌과 출입문의 일부를 개조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안채의 뒤편으로 배롱나무와 크게 자란 소나무들로 잘 가꾸어진 작은 동산이 있으며, 안채는 이 작은 동산을 등지고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앞면 5칸·옆면 1칸 규모로 네면을 퇴칸으로 ..

문화재 탐방 2021.10.18

전남 영암. 창녕조씨. 서호사(西湖祠) & 총취정(叢翠亭)

서호사(西湖祠)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31번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서구림리(西鳩林里) 남송(南松)마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첨추를 지냈던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 1580 선조 13∼1663 현종 4)을 기리는 창녕조씨 (昌寧曺氏) 문중 사우인 서호사(西湖祠)의 강당 총취정(叢翠亭)은 1943년 그의 후손들이 건립했으나 6.25때 무너져 1985년에 다시 건립했다. 골기와 팔작지붕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재실형이다. 주변은 외삼문과 좌측에 사당에 온갖 정원수로 기품 있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러나 원래는 조행립(曺行立)이 지어 모일 취, 취정(聚亭)이었던 것을 중수한 것으로 소나무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세한(歲寒)의 뜻을 기렸던 것으로 400여 년의..

발길을 따라 2021.10.15

전남 진도. 정유재란 순절묘역(殉節墓域)

정유재란 순절묘역(殉節墓域)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 (2001년 9월 27일 지정) 이 묘역은 정유재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진도군내 사족인 조응량(曺應亮·선무원종공신)을 비롯한 전사자들의 무덤들로 모두 232기이다. 전남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 117-3외 (오일시길 100) 정유재란 순절묘역(殉節墓域) 진도는 정유재란 때 울돌목을 중심으로 수군전이 전개되어 가장 큰 희생이 있었다. 1597년 9월 15일 진도 벽파진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16일 명량에서 대첩을 거두었으나 곧바로 신안 당사도로 후퇴해버려 우수영과 진도는 왜군의 침략을 받았다. 당시 진도관군은 군수인 송덕일(宋德馹)이 이끌었다. 명량해전 때 전사한 진도사람 중 관군으로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조응량 등 8명이다. 고군면..

발길을 따라 2020.10.12

전남 강진. 창녕조씨. 효정재 & 대계사

강진. 효정재(孝亭齋)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7호(2012.10.26) 전남 강진군 대구면 계율길 31-7 (계율리 717) 창녕조씨. 효정재. 효정재(孝亭齋)는 강진군 대구면 계율리 717번지에 있는 건물로 창녕조씨 37世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이 세웠다. 조몽린(曺夢鱗)은 효성이 지극한 선비로, 그의 부친인 조일상(曺一相)이 서재동(西齋洞) 초당(草堂)에서 거처하고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기 위해 현 장소에 가정자(假亭子)를 지어 기거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효정(孝亭)'이라 하게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대계사(大鷄祠)의 강당(講堂)으로 쓰이고 있다. 그간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를 하였는데, 최근 1982년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ㄷ자형으로 정면 5칸에 양측..

발길을 따라 2019.01.07

전남 강진. 창녕조씨. 효정재(孝亭齋)와 대계사(大鷄祠)

강진 효정재(孝亭齋) 전경.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47호. 전남 강진군 대구면 계율길 31-7(대구면 계율리 717) 효정재는 강진군 대구면 계율리 717번지에 있는 건물로 창녕조씨 37世 계호 조몽린(桂湖 曺夢鱗)이 세웠다. 조몽린(曺夢鱗)은 효성이 지극한 선비로, 그의 부친인 조일상(曺一相)이 서재동(西齋洞) 초당(草堂)에서 거처하고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기 위해 현 장소에 가정자(假亭子)를 지어 기거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효정(孝亭)'이라 하게 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대계사(大鷄祠)의 강당(講堂)으로 쓰이고 있다. 그간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를 하였는데, 최근 1982년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ㄷ자형으로 정면 5칸에 양측면은 3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상태..

발길을 따라 201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