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노파의 가르침

백산(栢山) 2015. 6. 26. 09:57

 

 

 

노파의 가르침.

 

- 경남 양산 영축산(영취산) 연회사 -

 

『도력은 무슨 도력, 매일 먹고 자는 일 아니면 하산하여 탁발이나 하는 것이 고작인 스님을 바라보고 3년씩이나 기다린 내가 어리석었지.』

 

《법화경》강의로 신통자재하다는 스님을 찾아 영취산 토굴에 가서 삭발한 연회 스님은 이제나 저제나 하고 《법화경》 강설을 기다리다 결국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3년이 되도록 나무하고 밥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연회 스님이 걸망을 지고 막 토굴을 나서려는데 준수하게 생긴 낯선 스님 한 분이 찾아왔다.

 

『누구신지요?』

 

『예, 낭자 스님의 법제자가 되려고 찾아온 지통이라 합니다.』

 

연회 스님은 내심 놀랐다.

 

『아니, 지통 스님같이 고명하신 분이 우리 스님의 법제자가 되려 하다니...』

 

연회 스님은 마음의 의문을 풀기 위해 다시 물었다.

 

『스님께선 어떻게 이곳에 오시게 됐는지요?』

 

『어느 날 절 앞마당에 까마귀가 와서 영축산에 가서 낭지 스님의 제자가 되라고 일러주기에 예사로운 일이 아닌 듯하여 찾아왔습니다.』

 

이때, 마을에 내려갔던 낭지 스님이 돌아왔다. 지통 스님이 인사를 올리자 낭지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신령스런 까마귀가 자네를 깨우쳐 내게 오게 하고, 또 내게 알려서 자네를 맞게 하니 이 어찌 상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지통은 감읍하여 눈물을 흘리며 낭지 스님에게 귀의했다.

 

이를 지켜본 연회 스님은 그때서야 자기 스님 법명이 낭지며 법이 높으신 분임을 짐작했다. 연회는 걸망을 풀고 지통과 함께 낭지 스님 문하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법제자 지통스님에게도 가르치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낭지 스님은 드디어 지통 스님에게 《법화경》강설을 시작했다. 참으로 심심 미묘한 법문이었다.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쌀이나 탁발해 오던 스님에게서 어떻게 저런 법문이 나올 수 있을까. 연회 스님은 불현듯 궁금증이 일어 낭지 스님 뒤를 몰래 밟았다. 산 정상에 오른 낭지 스님이 무슨 주문을 외우자 구름이 스님 곁으로 다가왔다. 낭지 스님은 그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다음날, 연회 스님은 스승 앞에 나아가 어제 일을 고백하고 용서를 빈 뒤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구름을 타고 어디를 다녀오시는 것입니까?』

 

낭지 스님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일이 그렇게 궁금하냐? 그렇담 일러주마. 나는 구름을 타고 청량산에 가서 문수보살 설법을 듣고 오느니라.』

 

연회 스님은 날이 갈수록 스승이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도력을 지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러 낭지법사는 제자 연회에게 《법화경》강술을 끝마쳐 주고 보현관행 닦는 법을 일러준 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스승이 떠나자, 연회 스님은 토굴 앞뜰에 연못을 파기 시작했다.

 

『저 스님 연못 파놓은 것 보려면 내 해골이나 볼 수 있을까?』

 

하루에 열 삼태기씩 파는 스님을 보고 나무꾼이나 일반 스님들은 빈정댔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연못은 완성됐고 계곡 물이 모여 연못물이 깊어지자 연꽃이 피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연꽃은 겨울이 되어도 시들지 않고 사시사철 피어 있으면서 온 산에 그윽한 향기를 풍겼다. 연회 스님은 30년 동안 《법화경》을 읽어 얻은 영험을 기뻐하며 보현관행에 더욱 주력했다.

 

『영축산에 이상한 연못이 생겨 춘하추동 지지 않는 연꽃이 피어 있답니다.』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처처에서 구경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연회스님의 준수하고 인자한 풍모에 저절로 합장을 하고 미묘한 향기의 연꽃에 환희심을 냈다.

 

어느 날, 눈병으로 앞을 못 보는 아들을 업고 온 여인을 측은하게 여긴 연회 스님은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아이의 눈에 비비면서 《법화경》을 읽어 주니 아이는 그만 눈을 떠 광명세계를 얻었다.

 

이 영험의 현장을 본 참배객들은 영축산 연꽃을 만병통치 영약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뒤 영축산 연못에는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병을 고친 환자들은 스님이 토굴에서 사시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불전을 세워 연회사라 절 이름을 붙인 뒤, 연회 스님은 당황했다.

 

『내가 국사가 되다니... 자격도 없지만 명예와 부귀란 혼탁한 급류에 몸을 던짐과 같으니 이 길을 피해야겠구나. 내가 없더라도 연꽃은 피어날 터이니까.』

 

연회법사는 국사 초빙을 하려는 대신들이 오기 전에 몸을 피하기 위해 급히 길을 떠났다. 스님이 산등성이를 넘어 남면으로 향하는데 초라한 노인이 나타나 물었다.

 

『스님,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십니까?』

 

『뜻밖의 소문에 어쩔 수 없이 암자를 버리고 조용한 토굴을 찾아가는 중이오.』

 

『그렇다면 스님이 연회법사시군요. 스님, 영축산에서 연꽃 장사를 하나 권력과 부가 있는 국왕 옆에서 연꽃 장사를 하나 연꽃 장사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노인장, 그런 속된 말로 사람을 속물로 만들지 마시오.』

 

기분이 상한 연회법사가 다시 발길을 옮기자, 노인은 스님 등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멍텅구리 같은 스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무슨 도를 닦는다고!』

 

참으로 높은 법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스님은 빠른 걸음으로 고갯길을 내려왔다. 이때 스님은 노파와 마주쳤다.

 

『스님, 오시는 길에 노인을 못 보셨어요?』

 

『봤는데, 아주 나를 불쾌하게 했어요.』

 

『아이고, 이런 답답한 스님을 봤나. 그분은 문수보살의 화현(化現)이십니다.』

 

『예?... 그럼 할머니는 누구신지요?』

 

『나는 문수보살을 모시는 변재천녀라오.』

 

『예?... 이 거룩한 두 분을 만난 인연을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노파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리하여 스님은 국사가 되어 왕과 조정대신을 제도하고 낭지법사 일대기를 정리한 후 자취를 보이지 않았다.

 

 

 

 

- 출처 / 웹사이트 -

 

 

'야담과 설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보다 해몽이 더 좋아  (0) 2015.07.06
닭 도둑이 명판관이요  (0) 2015.07.01
노가자(老柯子) 냄새  (0) 2015.06.22
거타지 설화  (0) 2015.06.17
무덤에 부채질하는 여인  (0) 201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