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장성. 아곡 박수량 생가

백산(栢山) 2016. 4. 27. 09:30

 

아곡 박수량 생가.

 

입구에 청백당(淸白堂)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청백로 24-34.

 

 

이곳은 명종 때 이름난 신하로 중종 9년(1514)에 과거에 급제하여 호조 예조 형조 공조판서(장관, 정2품), 한성부 판윤(서울시장, 정2품), 의정부 좌/우참찬(정2품), 함경도 전라도관찰사(종2품) 등 38년 동안 주요 관직생활을 두루 거치신 정혜공 아곡 박수량(1491~1554)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입니다.

 

선생의 정혜(貞惠)라는 시호(諡號. 돌아가신 분에게 임금이 내려주는 호)는 ‘청렴 결백하였다’라는 청백수절(淸白守節)에서 정(貞)을, ‘백성을 사랑하여 백성이 친부모처럼 따랐다’는 애민호여(愛民好與)에서 혜(惠)를 합하여 지었으며, 시호만 보더라도 청백리(淸白吏. 청렴 결백한 관리)에 선정된 선생의 관직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명종 임금은 선생의 청렴 결백한 생활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암행어사를 선생의 부모가 살고 계신 이곳에 보냈는데, 암행어사는 “선생의 고향집은 비가 새는 초가이며, 굴뚝에서는 한 달 중 반은 연기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라 보고하자 명종 임금은 이런 선생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고향 하남골에 99칸 짜리 청백당(淸白堂)을 지어 주셨습니다.

 

또한, 선생이 한양에서 돌아가신 후 고향에 내려올 장례비조차 없자 명종 임금은 장례비를 지원하고, 서해안의 돌을 골라 묘비를 내려보내면서 “박수량의 청백함을 새삼스럽게 비에 새기는 것은 그의 청렴함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워라”하여 선생의 묘 앞에는 비문 없는 백비(白碑, 전라남도 기념물 제193호)가 세워져 있습니다.

 

후손들은 선생의 생가였던 이곳에 정면 3칸, 측면 1칸, 팔작지붕 형태의 부조묘(不조廟,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받는 신위)와 재실을 짓고, 청백당이란 현판을 걸어 선생의 청렴정신을 지금까지 기리고 있습니다.

 

청백당은 불행하게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하마석(下馬石)과 유허비(遺墟碑, 유적의 흔적을 표시하는 비)만 남아 있으며, 현재 장성군에서는 선생의 청렴정신을 계승하며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이곳에서 가까운 홍길동테마파크에 청백한옥(淸白韓屋)이란 숙박 체험시설을 지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 웹사이트 -

 

 

아곡 박수량 선생 생가 및 부조묘 안내문.

 

 

 

 

아곡 박수량 생가 현판.

 

 

 

박수량 생가 입구를 들어서면 예상 밖으로 현대식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부조묘로 오르는 계단 옆에 자리한 장독대.

 

 

 

부조묘 출입문.

 

 

 

부조묘.

 

 

 

부조묘에 배향된 박수량 선생 위패.

 

 

 

단청이 오래되어 벗겨져 허술하다.

 

 

 

부조묘 앞 뜰에 동백나무.

 

 

 

건립된지 오래되지 않은 현대식 건물이 생가 터에 자리하고 있다.

 

 

 

생가 터 안쪽에서 바라본 청백당 입구 모습.

 

 

 

탐방: 2016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