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본당(報本堂)
저 앞에 보본당 건물이 보이며 좌측 언덕은 나주나씨의 묘역이다.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농촌길 103.
보본당(報本堂)은 나주나씨(羅州羅氏) 나두생(羅斗生)의 재실이다.
나두생의 자는 자현(子賢), 호는 제월당(霽月堂)이며 참판에 추증(追贈)되었다.
나두생은 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나주 반남에서 영암 적진방 나포촌[현, 금농촌]으로 이거하여, 나포정을 짓고 강학 교류에 힘썼다.
뒤에 후손들이 나두생을 기리고자 묘소 곁에 재실 보본당을 지었다.
보본당은 덕진면 소재지에서 서쪽 6㎞ 거리의 덕진면 용산리 3구 금농촌(錦農村)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의 북쪽 언저리에 있다. 인근에 용동제 저수지가 있다.
1938년에 나두생의 묘소 아래에 공을 추모하려는 뜻에서 후손 나도현(羅燾鉉)과 나도륜(羅燾綸) 등이 문중 사람들과 협의하여 검소한 재실인 보본당을 지었다. 1957년에 중수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목조 기와 건물이다.
낮은 기단을 마련하고 원형 초석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다.
앞면은 마루를 놓았고, 재실 내부 가운데는 마루 형태이고 양쪽은 방으로 구성하였다.
가운데 칸 출입문은 4분합 들어열개 문이다. 재실을 구획하는 담장이나 삼문 등은 따로 없다.
건물 기둥에는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인 주련을 8점 걸었다.
건물 가운데 칸은 대청마루 형인데 벽면에 「보본당기(報本堂記)」가 걸려 있다.
기문(記文)에 따르면 영암 북쪽 10리 거리의 나포촌에 증 참판 제월당 나두생의 묘 곁에 재각으로 보본당을 건립하였고, ‘추원 보본(追遠報本)’에서 ‘보본(報本)’이 먼저여야 하기에 ‘보본당’으로 이름 지었다고 적고 있다.
기문(記文)은 1957년 11월 하순에 정병소(鄭昺紹)가 기록하였다. 보본당의 편액은 정연한 해서체이다.
보본당(報本堂)은 나주나씨 문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관리인이 바로 옆에서 거주하여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보본당 마당에는 제월당 나공 남하 기적비(霽月堂 羅公南下 紀蹟碑)가 있는데, 후손 나갑균(羅甲均)이 비문을 짓고, 장흥 고광열(高光烈)이 글씨를 써서 1988년에 세웠다.
인근 병향원(丙向原)에 나두생의 묘소가 있는데, 1915년에 7세손 나규집(羅奎集), 8세손 나도황(羅燾煌), 나도현(羅燾鉉), 나도윤(羅燾綸)이 묘비를 세웠다.
1980년에 나갑균이 비문을 짓고 11세손 나철수(羅喆洙)가 글씨를 써서 다시 세웠다.
제일(祭日)은 음력 10월 15일이다.
- 웹사이트 -
나주나씨 묘역.
*제월당 나두생 묘소가 안장되어 있다.
보본당(報本堂)
보본당(報本堂)
제월당 나공남하 기적비
霽月堂 羅公南下 紀蹟碑
기적비 뒷면.
보본당(報本堂)
마당에 승용차는 주차되어 있으나 인적은 없고 견공 4마리가
엄청 환영해주며 매우 시끄럽게 짖어대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 빨리 서둘러 마무리했다.
보본당(報本堂) 현판.
관리가 다소 허술하여 보본당 주위가 어수선하다.
보본당 관리사.
방문객을 환장하게 환영해주던 견공들... ㅋㅋ
@블로그 자료를 취재하려 다니다가 맹견에게 쫒기어 혼쭐이 난 뒤로는 견공들이
으르렁 대고 짖어대면 겁이 날 뿐더러 시끄러워 정신이 없고 주인장에게 미안하여
서둘러 마무리를 하게 된다.
*나주나씨 SNS 취재를 마칩니다.
*다녀온 날: 2024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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