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 조수만의 전설.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는 큰못 하나가 있는데, 이 못터가 옛날 거부 조수만의 집터라고 한다.
조수만이란 사람은 옛날에 아주 큰 부자였는데, 1년에 겨자 일천 석을 수확하고 그가 가진 황소는 얼마나 많았던지 수천 명의 군사의 막사를 황소껍질로 포장해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조수만은 욕심이 많아 그 재산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항상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나라에 반역을 꽤하여 정권을 잡아보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엉뚱하게도 역적모의를 품고 문경새재에서 행동을 개시하다가 관군의 습격으로 그의 아들 삼형제와 함께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가 어느 시절이고 또 어느 임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전설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이렇게 되어 가일 마을 앞을 들어가다가 왼쪽에 있는 커다란 못이 조수만의 집터였다는 말과 함께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중대바위에 가면 조수만의 조상 묘가 있다고 전한다.
조수만이 역적모의를 하게 된 것은 선대의 묘터와 그의 집터에서 양기가 넘쳐흘렀기 때문이라 한다.
이 말을 들은 조정에서는 조수만이 살던 집터에는 큰못을 만들었고, 선대의 묘소는 파헤쳐 버리고 그곳에 무쇠를 끓여 부어 다시는 묘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듯이 요즘도 그 지역의 땅을 파면 쇠붙이가 출토된다고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조수만이가 역적모의를 하려고 할 때 며느리와 딸의 의견을 물었더니 며느리는 "아침에 메밀을 갈아 낮에는 꽃이 피고 저녁에 수확할 수 있거든 거사하자"고 말하였고, 딸은 쓸데없는 소리라고 하며 며느리 의견을 반대를 하였다.
며느리는 또 말하기를 "우리 집 주초 옆에 달걀을 아침에 두었다가 낮에 알을 까고 저녁에 수탉이 울거든 거사하자"고 하니 딸은 역시 며느리의 의견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조수만은 며느리의 말은 듣지 않고 딸의 주장에 따라 거사에 나섰음으로 실패하여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전술한 며느리의 말을 되새겨 보면 메밀이 하루에 열매를 맺을 리 없고 아침에 품은 달걀이 저녁에 수탉으로 될 수도 없다. 그러니 이는 거사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욕심이 많고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하는 조수만에게는 바른 말이 귀에 들릴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이 전설의 교훈은 욕심을 버리고 매사에 주어진 일에만 만족할 것이지 안 될 일을 경거망동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이다.
- 전설과 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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