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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여흥민씨. 임대정 원림(臨對亭 園林) 전남 기념물 제89호.

임대정 원림(臨對亭 園林)  전라남도 기념물 제89호.(2012.04.10.)   *소재지 : 전남 화순군 사평면 상사1길 48 (사평리 601)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 위치하고 있는 화순 임대정 원림(和順 臨對亭 園林)은 고반(考槃) 남언기(南彦紀)[1534~?]가 1500년대 말에 초려(草廬)를 짓고 조성한 곳이다.  이후 임대정 원림(臨對亭 園林)은 철종(재위 1849∼1863) 때 병조참판을 지낸 여흥민씨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1808~1882] 선생이 1862년 임대정(臨對亭)이라는 3칸의 팔작지붕 정자를 짓고 임대정(臨對亭)으로 편액하고 그 주위에 조성한 숲을 가리킨다. 임대정(臨對亭)이란 이름은 봉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평천과 합쳐지는 곳에 정자가 위치하였다 하여 '물가에서 산을..

문화재 탐방 2025.03.21

양질호피(羊質虎皮)

- 출처 / 다음블로그 - 양질호피(羊質虎皮) '양(羊)의 몸에 호랑이 가죽을 걸치다' 라는 뜻으로,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내실이 빈약함 또는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變)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혹자가 묻기를 '어떤 사람이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그 안채에 올라 공자의 책상에 엎드리고 공자의 옷을 입는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하니, 그 무늬는 그렇지만 그 바탕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혹자가 다시 '바탕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 라고 물으니, '양(羊)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아도 풀을 보면 좋아라고 뜯어먹고, 승냥이를 만나면 두려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

고사성어 편 2025.03.20

전남 화순. 화가, 오지호 기념관(吳之湖 記念館)

오지호 기념관吳之湖 記念館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1길 10 (독상리 432) 화가로서의 오지호와 국한문 혼용체를 부르짖던 오지호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오지호가 태어난 동복에 자리잡은 오지호 기념관은 그의 작품을 비롯해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기획전 등으로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5년 개관하였다. *화가 오지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오지호 생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지호 기념관.吳之湖 記念館. 오지호 스케치상. 오지호 년보.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지하 1층에 전시되고 있는 각종 서적들. 지하 1층의 각종 서적과 작품. 오지호 화백 생전의 모습. 2025.02.02. @필독 사항@ '백산..

발길을 따라 2025.03.19

기인(奇人) 소강절(邵康節) (4편)

*출처: 다음블로그. 기인(奇人) 소강절(邵康節) (4편) 서림사(西林寺)를 가다. 소강절 선생이 제자들과 우연한 기회에 서림사(西林寺) 부근을 지나고 있을 때, 제자들이 서림사란 현판을 가리키며 선생께 정단(正斷)을 청하자. 그는 하얀 종이에 서림사(西林寺)라고 정중하게 써놓고 바라보면서 뭔가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이 절에는 머지않아 도적 떼가 쳐들어와 온 승려들이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니라." 고 예언했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예언한 바를 그 절의 스님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승려들은 무슨 놈의 현판 글씨 하나 보고 도적 떼가 들어온다고 미친 소리를 하느냐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으나 선생이 예언한 대로 훗날 절에 도적 떼가 들어 난리가 일어났다. 일이 이렇게 되자 서림..

기인열전 편 2025.03.18

전남 화순. 화가, 오지호 생가(吳之湖 生家)

오지호 생가.吳之湖 生家.  등록문화재 제274호.(2006.09.19)  *주소: 전남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277-1번지.    1800년대에 건립된 이 건물은 한국 근대 서양 화단의 거목이자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인 오지호(1905~1982) 생가로, 이 지역의 일반적인 민가 구조인 ‘一’자형으로 되어 있다.  정면 7간으로 이루어진 사랑채와 안채가 앞뒤로 자리 잡고 있으며, 화실의 반은 마루 구조로 되어 있고 반은 온돌 구조로 되어 있다.  오지호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본 유학 후 한동안 기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오지호 생가 안내문.   화가 오지호 표석.   민가 구조인 ‘一’자형의 사랑채.   민가 구조인 ‘一’자형의 안채.   뒷편에서 본 사랑채.   안채 마루.  ..

문화재 탐방 2025.03.17

재미있는 해학 유머.

재미있는 해학 유머.   "지" 자로 끝나는 말. 모 미팅 이벤트사에서 50쌍의 남녀가 참가한 가운데단체 미팅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파트너가 정해지고 게임이 흥겹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사회자가 상품을 내걸더니 야리꾸리한 표정으로 퀴즈를 냈다. "사람 몸에서 "지"자로 끝나는 신체부위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방에서 답들을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딴지"..."허벅지"..."엄지"... "검지"..."중지"... 등등... 이런 식으로 답을 얘기하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실제로 몇 개 안 됩니다." 사회자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자... 여러분이 아는 답이 아직 남았습니다.이번에 답을 말하시는 분은 상품권 10만 원 권을 한 장 드립니다."라고 말하며 그 답을 유도한다. "다들 아시죠?!!!. ..

야담과 해학 2025.03.16

다자구야 들자구야.

다자구야 들자구야. 먼 옛날. 소백산에는 도적 떼들이 무척 많았다 한다.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다자구야 들자구야」라는 민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도둑을 잡기 위한 신호였다고 한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소백산 기슭의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를 경계로 하고 있는 죽령고개에 얽힌 이야기로써 이야기의 무대는 그 옛날에는〔대재〕라 불리었다 한다. 이 대재는 험준한 산골인 반면 흉악한 도적들로 인해 주민들은 영주와 단양을 넘나들기가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 금품은 물론 심지어 생명까지도 소홀히 여기는 도적 떼를 관가에서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산새가 무척이나 험할 뿐더러 신속히 움직이는 도적들을 당해 낼 수 없었..

전설과 설화 2025.03.15

전남 화순. 김해김씨. 충신각(忠臣閣) 전남 문화재자료 제59호.

충신각(忠臣閣)  김해김씨 정려각.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1984년 2월 29일)   *소재지: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길 16-1 (쌍봉리 498)    충신각(忠臣閣)은 김해김씨 김인갑(金仁甲:1564~1593), 김의갑(金義甲:?~?), 김시엽(金時燁:1586~1639) 등 3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1872년(고종 10)에 건립한 정려각이다.  김인갑은 1579년(선조 12)에 무과에 급제하고 1591년에 훈련원 판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김의갑은 김인갑의 아우로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한 후 형과 함께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했다.  김시엽은 김인갑의 아들로 1621년(광해군 13)에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과 1627년(..

문화재 탐방 2025.03.14

아심여칭(我心如秤)

아심여칭(我心如秤)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 라는 뜻으로, 저울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량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제갈량은 뛰어난 지략가로도 유명하지만, 역사적으로 상벌(賞罰)을 공정하게 시행한 것으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제갈량은 스스로 "내 마음은 저울과 같아서 사람들의 옳고 그름이나 공과(功過)에 대하여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도록 공정하게 처리한다(我心如秤, 不能爲人作輕重)"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제갈량이 지은 잡언(雜言)에 실려 있다.   - 출처 / 고사성어(故事成語) -  @필독 사항@ '백산' 닉네임이 기재되지 않고 올려진 댓글은주인없는 광고 전단지로 단정하고 삭제하겠으니양해하시기 바랍니다. ^^*

고사성어 편 2025.03.13

전남 화순. 제주양씨. 송석정(松石亭)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27호.

송석정(松石亭)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27호.(2006.01,09) 송석정(松石亭)은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서 태어난 양팽손의 증손인 양인용(梁仁容)이 축조한 누정(樓亭) *소재지: 전남 화순군 이양면 강정길 68 (강성리 762) 송석정은 조선조 선조 때 양인용(梁仁容)이 광해군 때 당쟁으로 정계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시문으로 벗들과 담소하며 유연자약한 여생을 즐긴 곳이다. 송석정(松石亭)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강성리 예성산 아래 지석천이 흐르는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소나무와 괴암이 어우러진 야트막한 절벽 위에 누정이 있어 사방을 전망하기 좋은 곳이다. 송석정 아래에는 마치 해자처럼 10여m가 넘는 넓이의 연못이 둘러 있다. 본래는 송석정을 휘..

문화재 탐방 202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