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765

전남 화순. 제주양씨. 삼지재(三芝齋)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15호.

삼지재(三芝齋) 제주양씨 서당.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15호.(2003.12.02.) *소재지: 전남 화순군 도곡면 고인돌2로 550 (효산리 27) 이 건물은 문중 재실 겸 서당으로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고가(古家)이다. 정면 5칸, 우측면 5칸, 좌측면 4칸의 팔작기와의 ‘ㄷ’자 단층 건물로 모산 마을에서 벗어나 한가한 계곡에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있다. 이 건물에 대한 정확한 연대 확인은 어려우나 학포 양팽손(1488-1545) 선생의 차자(次子)인 응태(應台)가 칡넝쿨에 뒤덮인 채 현재의 산속에서 발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16세기 중반에 건립된 건물이 아닐까 추정된다. 이 건물의 소유자인 제주양씨 문중 자손들에 의하여 이 건물은 서당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공..

문화재 탐방 2025.01.24

전남 화순. 제주양씨. 학포당(學圃堂) 전남 기념물 제92호.

학포당(學圃堂) 외삼문. 전라남도 기념물 제92호.(2021년 11월 19일) *소재지: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길 74-3 (쌍봉리 411) 학포당(學圃堂) 내삼문.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학자이자 서화가인 학포 양팽손의 서재였으나 지금 있는 건물은 당시의 건물이 아니고 1920년대에 후손들이 지은 것이다. 양팽손(1488∼1545)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11년(1516) 과거에 급제한 후 정언, 전랑, 수찬, 교리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관직을 잃은 뒤 고향으로 내려와 1521년 학포당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시와 그림으로 하루를 보냈다. 글과 그림에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학포유집』 2책이 전하고 있다. 1994년 학포당을 보수하였..

문화재 탐방 2025.01.22

전남 화순. 제주양씨. 학포 양팽손 부조묘.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

학포 양팽손 부조묘(學圃 梁彭孫 不祧廟)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2002.07.31.)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 562. 외삼문. 혜학문. 학포 선생 부조묘 안내판. 양팽손(梁彭孫, 1488년(성종 19년) ~ 1545년(인종 1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화가이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이다. 이 부조묘(不祧廟)는 학포 양팽손을 모시는 사당으로 현재는 신실구역, 강학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사당 배치를 하고 있으며 신실구역에만 보호담장을 둘렀다. 학포 선생은 조선 중종 때 정계에 진출하여 사간원 정언 등 벼슬을 하다 용담현령을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물러난다. 그는 기묘사화로 관직이 삭탈되기도 하는데 이..

문화재 탐방 2025.01.20

전남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 기념물 제4호.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 기념물 제4호.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 전경.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안내문. 이 비(碑)는 조광조(1482 ~ 1519) 선생이 기묘사화로 인하여 유배 왔던 이곳에서 사사(賜死) 당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중종을 왕 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僞勳削除)] 등 개혁을 단행하다가 중종 14년(1519) 훈구파의 모함을 받아 이곳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되어 1개월만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그 후 현종(1667) 당시의 능주목사인 민여로가 우암 송시열의 글을 받아 이 비를 세워 선생의 넋을 위로 하고 그 뜻을 되새기게 하였다. 외삼문 애우당(愛憂堂) 전경..

문화재 탐방 2025.01.17

전남 화순. 한산정씨. 삼강문(三綱門)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

한산정씨 삼강문(韓山程氏 三綱門)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2002년 7월 31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율치길 14-4 (신덕리 614) 한산정씨 삼강문 안내판. 한산정씨(韓山程氏) 삼강문(三綱門)은 정득운 · 정득원 · 정득원의 처 한산이씨 · 정덕린의 처 진주강씨 · 정대학 등 5명의 충 · 효 · 열을 기리기 위해 1885년(고종 22)에 세운 문(門)이다. 정득운(程得雲) · 정득원(程得元)은 형제로서, 정득운은 정유재란 때 화순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에 침입한 일본군을 방어하다가 순천에서 전사했고, 정득원은 광양만에서의 해상전투 때 전사했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으로 기록되고 두 사람 모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정득원의 부인 한산이씨는 부군의..

문화재 탐방 2025.01.08

전남 장성. 금성나씨 삼강문(三綱門) 전남 문화재자료 제128호.

금성나씨 삼강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8호.(1985년 2월 23일) *주소: 전남 장성군 삼서면 우치리 295-2번지. 충신 나통서· 효자 나봉서· 열녀이면서 나덕전의 처인 옥천설씨· 나준서의 처 공산이씨의 충·효·열을 기린 정려각이다. 옥천설씨는 병석에 누운 남편을 정성으로 간호하고 위독할 때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임으로써 위기를 넘기게 하였으며 세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큰아들 나봉서는 성균관 진사로 있으며 모친의 병구환에 정성을 다했고, 둘째 아들 나통서는 강화유진이라는 벼슬에 있다가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집하는 열의를 보였다. 셋째 며느리인 공산이씨는 남편 나준서의 병구환을 시어머니인 설씨처럼 하였다고 한다. 이 삼강문은 앞면 3칸· 옆면 1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문화재 탐방 2025.01.06

전남 장성. 하음봉씨. 만곡사(萬谷祠) 전남 문화재자료 제98호.

만곡사(萬谷祠)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 *주소: 전남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 337번지. 조선 정조 15년(1791)에 송계 봉유례· 풍애 봉즙· 묵헌 봉여예 등을 추모하기 위해 단을 설치했던 곳이다. 그 뒤 정조 17년(1793)에 신당인 만곡사를 세워 봉여예만 모시다가 철종 13년(1862)에 봉유례· 봉즙· 봉단의를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3년에 다시 세웠다. 건물로는 만곡사, 별묘, 숭절당, 고직사, 내삼문, 외삼문이 있다. 신당인 만곡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인 숭절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만곡..

문화재 탐방 2025.01.01

전남 장성. 경주이씨. 가산서원(佳山書院) 전남 문화재자료 제164호.

가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목. 익재영정(가산사 소장 익재영정)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4호)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영장로 2015 (홍정리 236) 가산서원(佳山書院)은 고려 후기 문신 익재 이제현(1287∼1367)과 이제현의 8대손인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 백사 이항복(1556~1618)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연산군 4년(1498) 이제현의 5대손인 장수 현감 이재인(1415~?)이 현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주산리 백산촌에 집을 짓고 은거하면서 익재의 영정을 모셨고, 1559년 후손 이대정이 사우 백산사를 지어 익재의 제사를 모셨다. 세월이 흘러 사우가 퇴락하자 영조 42년(1766) 후손 이언경이 낭월산 남쪽 기슭의 현 위치(장성군 삼서면 홍정리 가산마을)로 ..

문화재 탐방 2024.12.30

전남 장성.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전남 기념물 제70호.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전라남도 기념물 제70호.(1985년)  *지난 2016년 5월에는 황룡면 요월정로 58-53에 주차하고 관리사를 통하여요월정에 갈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관리사 문이 잠겨져 있어 아래 주소로 향했다. *소재지: 전남 장성군 황룡면 요월정로 87. (황룡면 황룡리 155-2) 원황룡마을회관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이정표를 따라 요월정원림으로 향한다..  요월정원림은 여름철 백일홍(배롱나무)이 필 때가 볼만한데 박수량 백비를 촬영하기 위해 가는 길에 잠시 들려갔다.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은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공조좌랑을 역임한 바 있는 사복시정(司僕寺正) 김경우(金景愚)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기 위해 지었다는 요월정이라는 정자 주위의 숲을 가리킨다. 요월정(邀..

문화재 탐방 2024.12.27

전남 장성. 아곡 박수량 선생 백비(白碑) 전남 기념물 제198호.

박수량 백비(朴守良 白碑) 전라남도 기념물 제198호. *소재지: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11-1. *집을 나설 때는 눈꽃을 못 보았는데 나주쪽을 지날 때부터 산들이 하얀 눈이불을 둘러쓰고 있다.아마 간밤에 눈이 내렸나 보다. 박수량은 중종 9년(1514)에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명종 원년(1546)에는 청백리에 올랐다. 명종 9년(1554)에 세상을 떠나면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백리로서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가 죽은 후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빈곤하였다고 한다. 이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르게 해주고 일생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서 찬양한다는 것은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백비를 세우도록 ..

문화재 탐방 202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