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768

광주광역시 남구. 경주최씨. 지산재(芝山齋)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지산재 표지석.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1979년 8월 3일 지정) 광주광역시 남구 지산재길 51(양과동 715-1) 지산재 안내판. 지산재(芝山齋)는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홑처마건물로써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신라 말 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이다. 당초는 1737년(영조 13)에 이곳에 영당을 건립하고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846년(헌종 12) 지산사를 새로 건립하여 최치원을 주벽으로 하여 최운하·최향안 등을 모셔오다가 1886년(고종 23)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영당 만이 남고 모두 철거되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1922년에 새로 복원된 것이다. 지산재는 당시 서원의 강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높직한 기단(基壇)에 다듬은..

문화재 탐방 2018.11.26

전남 영암. 전씨 충효문(全氏 忠孝門) 전남 기념물 제71호.

전씨 충효문 전경. 전라남도 기념물 제71호.(1985.02.15)  전남 영암군 서호면 서호로 341(장천리 553-1)    충효문. 전씨 충효문은 전남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큰공을 세운 전몽성(1561∼1597) 장군 형제의 충절과 효성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전몽성은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왜구를 무찔러 큰공을 세웠다.  정유재란(1597) 때 동생 전몽진 등과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르다가 해암포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동생 전몽태 장군은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에 장만, 김완 장군과 함께 큰공을 세웠다. 후에 이들 3형제의 공..

문화재 탐방 2018.11.21

전남 영암. 평산신씨 삼효각(平山申氏 三孝閣) 영암향토문화유산 제4호.

평산신씨 삼효각 전경.  영암향토문화유산 제4호.2009년 7월 3일.  전남 영암군 영암읍 둔덕길 44-10(농덕리 495-4)   삼효각 일각문.  평산신씨 삼효각(平山申氏 三孝閣)은 평산신씨 문중의 신대유(申大有: 1780~1850)와 그의 아들인 신직(申직): 1791~1867)과 신경(申經: 1795~185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이다. 신대유는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한양에서 수학하던 중 1786년(정조 10)에 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살폈다. 어머니의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였고, 겨울에 죽순을 구해서 드시게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해서 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신대유의 ..

문화재 탐방 2018.11.19

전남 영암. 장암정(場岩亭) 전남 기념물 제103호.

영암. 장암정 전경.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   전남 영암군 영암읍 무덕정길 63 (장암리 496)  장암정은 지난 2015년 1월 25일에 다녀간 바 있는데 다시들렸더니 세월이 지난 탓인지 아니면 관리가 소홀한 탓인지 당장이라도 보수를 서둘러야 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이 크다.    장암정(場岩亭)  장암정(場岩亭)은 장암 대동계에서 현종 9년(1668)에 동약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이다. 마을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으며 잔치를 하던 향음주례, 백일장, 회갑연 등과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동약(洞約)이란 조선시대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좋은 일은 서로 권유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

문화재 탐방 2018.11.09

전남 순천. 낙안향교(樂安鄕校) 시도유형문화재 제112호.

순천. 낙안향교(樂安鄕校) 시도유형문화재 제112호. (1985.02.25) *마음을 먹고 찾아간 향교나 서원들은 주로 문이 잠겨있어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낙안향교 역시 문이 잠겨있어 내부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 외부 담장 밖에서 촬영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 222번지(교촌길 59)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낙안향교는 효종 9년(1658)에 용암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동재·서재·내삼문 등이 있다. 내삼문을 경계로 배움의 공간과 제사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앞쪽 낮..

문화재 탐방 2018.10.22

전남 순천. 임경업장군 비각(林慶業將軍 碑閣) 문화재자료 제47호.

임경업장군 비각(林慶業將軍 碑閣)  문화재자료 제47호.(1984.02.29)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내.  임경업장군 비각 안내문.  낙안읍성 내의 객사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변에 있는 한 채의 비각과 그 안에 서있는 비(碑)로, 임경업장군의 어진 다스림을 기리고 있다.   임경업(1594∼1646)은 조선시대 중기의 명장으로, 인조 4년(1626) 이곳 전라도 낙안지역의 군수로 부임해왔다. 인조 6년(1628) 3월 서울지역으로 옮겨갈 때까지 낙안읍성을 쌓는 등 어진 다스림을 베풀었으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에도 큰공을 세웠다.  이 지역에는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를 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신봉하기도 하여 매년 정월 보름이면 낙안면 주인들에 의한 큰 제사가 행하여지고 있다..

문화재 탐방 2018.10.17

전남 순천. 낙안읍성(樂安邑城) 사적 제302호.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사적 제302호. (1983.06.14)  전남 순천시 낙안면 평촌리 6-4.  낙풍루(樂豊樓) : 남문.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처음 쌓았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이다.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

문화재 탐방 2018.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