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798

전남 진도. 소전미술관(素筌美術館)

소전미술관(素筌美術館)  *소재지: 전남 진도군 진도읍 철마길 29.  소전미술관은 소전선생의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선생의 평생역작과 선생이 보유하고 있던 작품 모두를 진도군에 기증하여 2003년 5월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진도읍 성내리 진도군 청사 바로 옆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소전선생은 1903년 5월 29일(음 4월 28일) 진도읍 교동리에서 출생하여 5세 때부터 조부(옥전 손병익)에게 한학과 서법의 기본을 익힌 소전은 진도공립보통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1920년 상경하여 양정고보에 입학, 성당(惺堂 金敦熙1871∼1936)이 이끄는 상서회(尙書會)에 들어가 사사했으며 1924년 양정고보 3학년 때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예서로 쓴 '안씨가훈(顔氏家訓..

발길을 따라 2024.09.25

전남 진도. 운림 삼별초공원.

운림 삼별초공원 안내도. 안내번호 : 061-543-2002. *소재지: 진도군 의신면 의신사천길 15-21. (농어촌 테마공원) 운림 삼별초공원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첨찰산과 한국남종 문인화의 성지인 운림산방 자락에 사천리가 보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원인 13세기 몽고와 맞서 싸웠던 삼별초를 테마로 조성한 전국 최초의 공원으로 휴양, 레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삼별초 안내문. ※ 삼별초. 고려무신정권의 특수부대로 1219년(고종 6년) 최우가 정치적 권력을 탄탄히 할 목적으로 도적예방 등 치안유지 명분을 내세워 야별초를 만들었으며, 그 숫자가 많아지자 좌별초, 우별초로 나누고 후에 몽고군에서 탈출해온 신의군을 통합, 삼별초라 칭했다. 삼별초는 몽고의 잦은 침략에 맞서 전투의 임무도 수행하..

발길을 따라 2024.09.23

전남 진도. 배중손 사당(裵仲孫 祠堂)과 고려항몽 충혼탑.

배중손 사당(裵仲孫 祠堂) *소재지: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29. 배중손 사당은 진도군 임회면 진도대로 4212 (백동리 15-9) 현재 윤고산 사당에 동거하고 있었으나 2022년에 이곳으로 신축 이전하였습니다.  배중손(裵仲孫, ?~1271)은 고려 무인정권 말기의 장군으로 원종 11년(1270년) 삼별초 반몽(反蒙) 봉기의 지도자(장수)로서 진도와 제주도를 거점으로 고려의 정통 정부를 자임하면서 반몽고 항전을 지속한 인물이다. 삼별초 배중손 장수가 남도석성 전투에 패한 후 굴포 해안 쪽으로 이동하다당시 바다 갯뻘밭이었던 굴포(백동리)에서 최후를 마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   배중손 장군상.  요약.1270년 몽골에 들려 화해하고 돌아온 고려 왕 원종 11년에 환도를 ..

발길을 따라 2024.09.06

전남 진도. 윤고산 사당 & 고산둑.

고산둑 윤고산 사당 표지판.  *소재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대로 4212 (백동리 15-9)   이 장소에는 본시 윤고산 사당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굴포리 고산사당에 이 마을 출신 동양화가인 백포 곽남배 선생의 주선으로 지역민들에 의해 배중손의 사당과 동상이 세워진다. 고로 윤선도 선생 사당과 배중손 동상과 사당이 동거하게 된다. 이곳에 배중손 사당과 동상이 세워지게 된 연유는 배중손은 진도를 무대로 대몽항쟁을 벌였던 삼별초군의 장수로 여몽연합군에 의해 삼별초군의 중심 거점인 용장산성이 무너지고 쫓기는 몸이 되는데, 이중 김통정은 금갑진을 거쳐 제주도로 가지만, 임회면 방면으로 패주를 하던 배중손 무리는 이곳 남도포와 굴포의 뻘밭에서 완전 섬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를 기리고자 하여 배중손 사당을..

발길을 따라 2024.09.04

전남 진도. 나절로미술관.

진도 나절로미술관.  *소재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대로 3886. ( 상만리 403)  진도 나절로미술관은 한국화가 이상은씨가 폐교된 (구)상만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으로 관장 이상은 화백은 1952년생으로 진도출신이며 아호가 '나절로'이다.나절로는 이상은 화백의 아호로, '스스로 흥에 겨워 산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다.  이상은 화백은 걸레스님으로 알려진 중광스님과 어울리고,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모임에서 이상은 화백이 쓴 자작시인 '나절로'를 듣고 아호로 정했다고 한다.  미술관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일요일은 12시 이후에 개관한다.입장료는 성인 2,000원/ 학생 1,000원이며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다.문의전화: 0507 - 1310 -  8841   무더위 때..

발길을 따라 2024.09.02

충남 홍성. 동주최씨. 기봉사(奇峰祠) 최영 장군 사당.

최영장군 사당(祠堂) - 기봉사(奇峰祠)  *소재지: 충남 홍성군 홍북면 대인리 산39-7번지.  【최영(崔塋, 1316~1388)】고려의 명장ㆍ재상. 본관은 동주(東州). 평장사 유청의 5세손, 사헌규정 원직의 아들로 홍주 적동(현재 홍성 홍북 노은리)에서 탄생. 1352년(공민왕 1)에 조일신의 난을 평정. 1358년 배 400척으로 오예포에 침입한 왜구를 복병을 이용하여 격파. 1359년 홍건적 4만 명이 침입하여 서경을 함락시키자, 적을 무찔렀다.  1361년에 홍건적 10만이 다시 침입하여 개성을 함락시키자, 이듬해 안우ㆍ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여 개성을 수복. 1367년(우왕 2) 왜구가 연산 개태사에 침입하자, 늙은 몸으로 출정하기를 자원하여 홍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러 그 공으로 철원..

발길을 따라 2024.08.28

충남 홍성. 만해 한용운 문학체험관

만해 문학체험관. *소재지: 충남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 318번길 83. 만해 문학체험관은 생가지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데, 생가지를 먼저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문학체험관을 들렸다. 체험관은 규모도 작은 편이 아니었으나 특히 간결하며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만해 한용운 선생을 다시 한 번 조용히 생각하며 떠오르게 하였다. 한용운(1879∼1944) 선생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승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으며 호는 만해(萬海)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일제에 대항하는 단체였던 신간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는데, 이 신간회는 후에 학생 의거와 전국적인 민족 운동으로 전개되고 추진되..

발길을 따라 2024.08.16

전남 나주. 진주정씨. 용산사(龍山祠)

용산사(龍山祠) 진주정씨 정준일(鄭遵一) 사당. 용산사(龍山祠)는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에 자리하고 있으며 진주정씨 정준일(鄭遵一) 을 향사하는 사당이며 주위에 철천사와 만호정이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 있어 담장 밖에서 촬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소: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53. 용산사는 1675년에 창건하여 194년 간을 유림이 향사해 오다가 1868년에 서원철폐로 인하여 훼철을 당하였다. 광복 직후인 1946년에 덕룡산 난봉하에 부설하고 향북당 정준일과 그의 맏아들인 초심당 정현 부자의 임진왜란 당시 충절과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들이 향사했다. 정준일(鄭遵一), 1547년(명종 2)∼1618년(광해군 10). 조선 중기의..

발길을 따라 2024.06.24

전남 나주. 이천서씨. 철천사(哲川祠)

철천사(哲川祠) 이천서씨. 서린 사당. *소재지: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341 (철야마을) 철천사(哲川祠)는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에 있는 사당으로, 이천서씨(利川徐氏) 시조인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阿干大夫). 부총리)의 11세손으로 병부상서공파 중시조로,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 대광내의령(大匡內議令)에 이르렀던 고려시대의 문신 서린(徐鱗 1222~1305)은 고려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후 벼슬이 병부상서에 이르렀으나 간신 권함(權咸)의 모함으로 영평감루로 좌천되어 이곳에서 감무를 역임한 후 봉황면 각동리 내동마을에 정착하면서 이천서씨 상서공파의 입향조가 되었다. 1794년(정조 18) 지역 유림이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1947년 중건되었고, 그 후 재일본 실업..

발길을 따라 2024.06.19

전남 나주. 이천서씨 상서공파 세거지 철야마을.

이천서씨(利川徐氏) 상서공파(尙書公派) 세거지로 25대 종손이 살고 있는 철야마을 입구.  *주소: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343-1번지.  이천서씨(利川徐氏)의 시조는 서신일(徐神逸)이다. 그는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아간대부(阿干大夫) 벼슬을 하였으나, 신라의 국운이 다하였음을 알고 이주(利州ㆍ지금의 利川)에 있는 효양산(孝養山)에 들어가 은거했다. 그의 아들 서필(徐弼ㆍ901-965)은 고려 초 광종 때 정승에 해당한 내의령(內議令ㆍ 從一品)을 지냈고, 서필의 세 아들 중 둘째인 서희(徐熙ㆍ942-998)도 문과 장원급제하여 내사령(內史令ㆍ內議令이 바뀐 관직)에 올랐다. 그는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으로 거란을 물리쳤고,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장한 인물이다. 또 서희의 아들 서눌(徐訥)도 문과에 장..

발길을 따라 202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