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1236

전남 나주. 함평이씨. 남사정(南莎亭)

남사정(南莎亭) 함평이씨 정자.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시면 초동길 39-1. 남사정(南莎亭)은 전남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에는 초동마을이 있는데 마을형성은 고대국가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 마을에는 맨 먼저 행주기씨가 거주하였고, 다음으로 함평이씨가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1450년경에 병조판서를 지낸 이극명(李克明 1388~1454)이 시량에서 살다 이곳으로 와서 마을이 형성됐다. 사촌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이곳에 억새풀이 무성해 사(莎) 샛골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래서 이 마을에 명칭 중에는 사(莎)자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마을 중심에는 1938년경에 이 지역 초동마을의 부농(富農)이였던 함평이씨 남사 이계선(南莎 李啓善: 1863~1905)이 지은 남사정(南莎亭..

발길을 따라 2023.10.11

전남 영암. 함평노씨. 관봉사(冠峯祠)

관봉사(冠峯祠) 입구 어귀에서... 함평노씨 사우. *주소: 전남 영암군 서호면 장복동길 6-10 (쌍풍리 679-2) 관봉사는 영암군 서호면 관봉(冠峯) 아래에 있는 함평노씨 사당으로 악은(岳隱) 노신(魯愼), 돈은(遯隱) 노종주(魯宗周), 금계(錦溪) 노인(魯認) 세 분을 모시고 있다. 악은 노신은 황건적을 토벌한 1등 공신으로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채읍인 함평 월악산에 와서 송악을 향해 매월 초 4배(拜)하고 곡(哭)을 한 충신이며 절의의 표상이다. 돈은 노종주는 문무를 겸전(兼全)한 위인으로 일찍이 세종의 지우(知遇)를 받았던 분으로 단종 복위 운동실패 후 영암 은적산 장복동에 은둔하였다. 금계 노인은 이율곡의 문인으로 역시 문무겸전한 분으로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싸우다가 일본으로 끌려갔으나 탈출..

발길을 따라 2023.09.22

전남 영암. 전주이씨. 소호사(蘇湖祠)

소호사(蘇湖祠) 전주이씨 사우. *소재지: 전남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 625 (서호로 881-5)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성인이 태어날 명당지라 하여 성재(聖才) 또는 성재동(聖才洞)이라 하였다. 성재마을에는 전주이씨 문중의 집회소로 쓰이기 위해 1919년에 지은 취모재(翠慕齋)가 자리하고 있다. 1992년에 삼문, 1994년에 취모재를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암에 거주한 전주이씨 문중 재실 겸 집회소로 근대기의 향촌사를 알 수 있다. 취모재에서는 출판 활동도 이루어져 1936년에는 이병태(李炳兌)의 주도로 전주이씨 완창대군파보(全州李氏完昌大君派譜)가 간행되었다. 현재 취모재는 전주이씨 문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보존 관리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문화재로는 전주이씨..

발길을 따라 2023.09.20

전남 영암. 천안전씨. 수래정(修來亭)

수래정(修來亭) 천안전씨 정자.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470-1. 수래정(修來亭)은 천안전씨(天安全氏) 문중의 정자로서 천안전씨는 전사민의 강진 유배로 처음 영암지역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후 그의 5세손인 전승문(全承文)이 1504년(연산군 10)에 이곳 영암으로 이주하면서 주로 엄길 마을을 중심으로 천안전씨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후손 중에는 전광택[?~1819], 전광정[1754~1809], 전영택[1776~1835], 전종행[1788~1835] 등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4인이 제일 학덕이 뛰어났고, 수래정 또한 이들과 관련이 있다. 수래정은 정자 내부에 걸려 있는 '수래정기(修來亭記)'가 갑술년(甲戌年)에 쓰인 것으로 보아 1814년(순조 14)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

발길을 따라 2023.09.18

전남 나주. 월정서원(月井書院)

나주. 월정서원(月井書院) *소재지: 전남 나주시 노안면 금안2길 188 (금안리 406: 광곡마을) 월정서원(月井書院) 월정서원(月井書院)은 1659년(효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순(朴淳)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9년에 '월정(月井)'이라 사액되었으며, 1789년에 김계휘(金繼輝)· 심의겸(沈義謙)· 정철(鄭澈)· 홍천경(洪千璟)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0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4칸의 강당, 외삼문(外三門), 3칸의 고직사(雇直舍), 행랑 등이 있다. 사우에는 박순· 김계..

발길을 따라 2023.09.06

전남 나주. 금성나씨. 체암 나대용 장군 묘소.

체암 나대용 장군 묘소. 금성나씨 세장산. *주소: 전남 나주시 문평면 대도리 192. *찾아가는 길. 나대용 장군 생가를 거쳐 묘소를 가기 위해 아랫마을에 자리한 봉강사를 지나 안국천 다리를 건너 818번(문평로) 지방도로로 우회전하여 약 2km정도 가다가 용현사로 들어가는 저수지(대도지) 둑을 (소사길: 용현교) 타고 들어간다. 저수지(대도지) 둑을 (소사길: 용현교)을 지나서 용현사 700m라는 푯말이 세워진 곳에서 용현사 반대방향인 좌측 오솔길로 들어선다. 승용차 통행은 가능하다. 경목재(敬睦齋) 오솔길을 한참 들어가면 경목재라는 재각이 나타난다. 경목재 뒷편으로 금성나씨 세장산이다. *경목재 주소: 전남 나주시 문평면 대도리 192. 경목재(敬睦齋) 경목재(敬睦齋) 현판. 경목재 뒷편으로 보이는..

발길을 따라 2023.08.30

전남 나주. 금성나씨. 경모사(景慕祠)

경모사(景慕祠) 금성나씨 사우 (錦城羅氏 祠宇) *소재지: 전남 나주시 문평면 대도대장길 21-5. 금성나씨 가문유래(錦城羅氏 家門由來) 중국 고대 축융(祝融)의 후예로 알려진 금성나씨(錦城羅氏)는 기원전 759년(주나라 무왕 때)에 광정공(匡正公)이 공을 세워 나국(羅國)에 봉해짐으로서 나라 이름을 따서 성(姓)으로 삼은 것이 나씨(羅氏)가 되였다. 금성나씨(錦城羅氏) 대동보에 의하면 축융의 후손 주공(珠公)이 한고조(漢高祖)때 나라에 공을 세우고 예장군(豫章君)에 봉해져서 예장나씨(豫章羅氏)가 되였다. 당(唐) 태종(太宗)때 상서좌북야(尙書左僕射) 나지강공(羅至强公)이 조정의 고구려 정벌론을 반대하고 우리나라(발라형=나주)에 망명한 후 신라국 좌승상 (左丞相)에 이르렀으며 그 후에 十餘代가 대대로 나..

발길을 따라 2023.08.21

전남 나주. 함평노씨. 거평사(居平祠)

거평사(居平祠) 함평노씨 3대 사당. 나주 거평사, 무안 학산사, 영암 관봉사 중 하나, *주소: 전남 나주시 문평면 동원리 644-14. (체암로 348-11)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동원리 동아마을에 있는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노인(魯認) 등 3인을 배향하고 있다. 거평사(居平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금계(錦溪) 노인(魯認 1566~1622)을 기리기 위하여 1789년(정조 13) 노인의 출생지인 나주시 문평면 동원리 무학산(舞鶴山) 기슭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 명칭은 금계사(錦溪祠)였다. 1814년(순조 14) 노인의 9대조인 무열공 노신(魯愼 1336~?)을 추배하면서 명칭을 거평사(居平祠)로 고쳤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882년부터 제단을 설치하여..

발길을 따라 2023.08.16

전남 나주. 봉화정씨. 삼봉 정도전 유배지.

백룡산 아래 자리한 정도전 유배 적거지의 초막과 정식(鄭軾)장군 신도비가 보인다.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622. 삼봉 정도전은 고려 말인 1375년 나주 백룡산 아래 소재동으로 귀양와서 약 3년간 생활하면서 많은 글을 남기고 사상을 정립하였으며 이는 삼봉집의 금남잡재, 금남잡영에 남아있다. 다시면 운봉리에는 정도전이 유배생활을 하던 초막이 재현되어있다. - 나주시청 홈페이지 - 나주정씨 세장산 전경. 나주정씨 세장산 표석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봉 정도전은 봉화정씨인데 나주로 유배 온 정도전은 나주정씨의 도움으로 백룡산 아래 소재동의 나주정씨 땅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초막을 짓고 지낼 수 있었다 한다. 나주정씨 정식(鄭軾) 장군 신도비. 조선 초기 군사제도와 군적정리에 공을 세워 경무(..

발길을 따라 2023.08.14

전남 무안. 광산김씨. 모충사(慕忠祠)

모충사(慕忠祠) 광산김씨 매죽헌 김득남 제향 사우. *주소: 전남 무안군 해제면 양매리 762. 모충사(慕忠祠)는 1829년(순조 29) 매곡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여 무신 매죽헌 김득남(1601~1637)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무안 해제에서 광산김씨 문중의 독자로 태어난 매죽헌은 신장이 매우 컸으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무과에 급제하여 서천포만호를 지냈고 인조반정(1623) 때 공을 세워 사도첨사에 제수되었다. 이괄의 난(1635) 때 공주까지 어가를 호종하였고, 병자호란(1636) 때는 서해의 병참기지인 철곶진(양화대교)의 첨사로 임명되어 굴포교 강화 길목을 차단하고 청군의 한양진격을 결사적으로 분전하니 청군은 할 수 없이 길을 돌려 남쪽으로 돌 다리(굴포석교, 호교)를 놓고 통과하였다...

발길을 따라 2023.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