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766

전남 영암. 양장리 곰솔

영암 군서면 양장리 곰솔. 전라남도 기념물 제182호.  전남 영암군 군서면 양장리 485번지. 영암 양장리 곰솔은 수령이 300년 가량으로 곰솔의 높이는 14m, 가슴높이 둘레 4m, 수관폭은 동쪽 11.9m, 서쪽 13m, 남쪽 14m, 북쪽 12.6m이고, 생육상태가 양호하다.  광복 이전까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던 의미 있는 나무이고, 주위 수목들과 함께 서북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의 역할을 한다.  - 참조 / 우리 지역 문화재 -  양장리 곰솔 안내문.  반대방향에서 본 곰솔.  곰솔의 아랫부분. 답사: 2015년 1월 25일.

문화재 탐방 2015.02.12

전남 영암. 장동사(長洞祠)

영암 장동사 전경. 전라남도 기념물 제109호. 전남 영암군 서호면 길촌길 61-2 (엄길리)  영암 장동사(長洞祠)는 조선(朝鮮) 숙종(肅宗) 3년(1677)에 임진왜란(壬辰倭亂) 공신(功臣)인 전몽성(全夢星: 1561∼1597)을 추모하기 위해 서호면(西湖面) 장천리(長川里) 장동마을에 창건한 사우(祠宇)로, 고종(高宗) 5년(1868)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훼철(毁撤)되었다가 1946년 유림(儒林)의 발의(發議)로 현재의 엄길마을에 다시 세웠다.  전몽성은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高敬命)과 금산전투(錦山戰鬪)에 참여한 후 함평현감(咸平縣監)을 제수 받았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동생인 몽진(夢辰)· 몽태(夢台)와 첨사(僉使) 유장춘(柳長春) 등과 율치(栗峙)에서 싸운 후, 해암포(海岩浦)·..

문화재 탐방 2015.02.11

전남 영암. 영보정(永保亭)

영암 영보정(永保亭) 전라남도 기념물 제104호.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영보정(永保亭)은 연촌 최덕지(1384∼1455) 선생이 관직을 떠난 후 영암의 영보촌에 내려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사위 신후경을 비롯하여 전주 최씨, 거창 신씨 문족이 함께 지은 정자이다.  최덕지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학식이 높고 행동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불타버려서 한 권만 남아 있고 여러 현인들의 논설만 전하고 있다.  처음 있던 정자는 황폐되어서 최정과 신천익(1592∼1661)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지었다. 정자는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영보정은..

문화재 탐방 2015.02.10

전남 영암. 집영제(集英齊)

영암 집영제 전경.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16호. 전남 영암군 학산면 은곡길 18 (은곡리)    영암 집영제(集英齊)는 서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19세기 말에 지은 것으로 본채와 대문채, 부속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인 집영제(集英齊)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몸체에, 앞면 1칸· 측면 3칸 반의 날개채가 몸채보다 1칸 내밀어져 H자형을 이루고 있다. 몸채는 3칸을 모두 대청으로 하여 6칸 규모의 커다란 마루 공간을 만들어 서당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게 하였다. 대청 앞은 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몸채 양쪽에 있는 날개채는 맨 앞 돌출된 1칸에 누마루를 설치하고 나머지 뒤칸은 방으로 구성하였다.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누마루에 원형의 돌기둥을 세웠다...

문화재 탐방 2015.02.09

전남 영암. 장암정(場岩亭)

영암 장암정 전경.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  전남 영암군 영암읍 무덕정길 63 (장암리)  장암정(場岩亭)은 장암 대동계에서 현종 9년(1668)에 동약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이다. 마을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으며 잔치를 하던 향음주례, 백일장, 회갑연 등과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동약(洞約)이란 조선시대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좋은 일은 서로 권유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 있는 정자는 영조 36년(1760), 정조 12년(1788), 순조 19년(1819)에 각각 고쳐지었으며, 고종 17년(1880)에 전체적으로 보수 공사를 하였고, 1976년에 일부를 수리했다. 정자는 ..

문화재 탐방 2015.02.07

전남 영암. 전씨 충효문(忠孝門)

전씨 충효문.  전라남도 기념물 제71호. 전남 영암군 서호면 서호로 341 (장천리)     전씨 충효문은 전남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큰공을 세운 전몽성(1561∼1597) 장군 형제의 충절과 효성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전몽성은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왜구를 무찔러 큰공을 세웠다. 정유재란(1597) 때 동생 전몽진 등과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르다가 해암포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동생 전몽태 장군은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에 큰공을 세웠다. 후에 이들 3형제의 공적을 표창하기 위해 고종 24년(1887)에 이 충효문을 건립케 하여 ..

문화재 탐방 2015.02.06

전남 장흥. 만수사(萬壽祠)

만수사 전경.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1호.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 (만년리)  만수사(萬壽祠)는 고려시대의 유학자 문성공(文成公) 회헌(晦軒) 안향(安珦, 1243∼1306)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지은 사당으로 안원형· 안면· 안정생· 주세붕· 안중목을 배향하였으며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해동사를 별도로 마련하여 놓았다. 안향(安珦)은 고려시대 유학자로 고려 원종 1년(1260)에 문과에 합격한 후 교서당, 국자사업, 도첨의중찬 등 많은 벼슬을 지냈으며, 후진양성과 유학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안원형은 밀직사, 평장사 등을 지낸 인물이며 안면은 사간원정언, 정당문학 등을 지냈고 안정생은 직제학을 지낸 인물이다. 만수사, 내삼문, 강당, 외삼문, 해동사 ..

문화재 탐방 2015.02.04

전남 장흥. 사인정(舍人亭)

장흥 사인정(長興 舍人亭) 전경.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5호. 전남 장흥군 장흥읍 진흥로 891(송암리 359) 사인정(舍人亭)은 설암(雪巖) 김필(1426∼1470)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정자로서 단종(재위 1452∼1455) 때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낸 설암(雪巖)은 계유정란(1453) 후 벼슬을 버리고 장흥에 내려와 숨어살다가 정자를 짓고 후학들을 교육시켰다. 선생이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자 후손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사인(舍人)'이란 벼슬이름을 따서 사인정(舍人亭)이라 불렀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에 온돌방을 두고 주위를 모두 마루로 둘렀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사인정 입로석.   장흥 사인정 안내..

문화재 탐방 2015.02.03

전남 장흥. 동백정(冬柏亭)

동백정(冬柏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9호. 1988. 12. 21. 지정.    전남 장흥군 장동면 흥성로 815-86 (만년리 707)   동백정(冬柏亭)은 장동면 호계마을 옆으로 흐르는 부산천변의 동산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서 조선 숙종 41년(1715)경부터 마을 사람들이 참석한 대동계의 집회소로 이용하던 마을 정자이다. 처음 지은 것은 세조 4년(1458) 동촌 김린(1392∼1474)이 관직에서 은퇴한 뒤, 은거하기 위해 지은 가정사(假亭舍)로부터 시작된다. 가정사(假亭舍)는 선조 17년(1584) 후손인 김성장이 고쳐지었고 김린(金麟)이 심어 놓았던 동백나무가 울창하여 정자의 이름을 '동백정(冬柏亭)'이라 고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5년 후손들이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

문화재 탐방 2015.02.02

전남 장흥. 장흥위씨. 백산재(栢山齋)

백산재(栢山齋) 전경.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72호.   전남 장흥군 평화리 69번지 (외평길 168)  장흥 백산재(栢山齋)는 문중재실이다가 장흥 위씨(魏氏) 문중의 사우인 하산사(霞山祠)의 강당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원래 조선후기 장흥부의 관아건물을 2차 이건을 통해 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건 과정에서는 거의 원형 그대로 옮겼다고 전하고 있다. 백산재(栢山齋)는 건축 부재나 결구수법 등으로 보아 조선후기인 19세기경의 건물로 보인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된 본 건물은 비록 이축과정에서 다소 변형된 구조 기법을 보이기는 하나 넓은 대청과 온돌방 등 조선후기 관아건물 구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들보 등 사용부재도 매우 장대하고 견실하며 기둥은..

문화재 탐방 201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