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766

전남 장흥. 연곡서원(淵谷書院)

연곡서원 전경.소재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연곡길 31.전라남도 기념물 제18호.연곡서원(淵谷書院)은 노봉 민정중(1628∼169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서 민정중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호조·공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분이다. 숙종 원년(1675) 당쟁으로 장흥에 유배되었을 때 이 지방 선비들을 가르쳤는데 지금 있는 서원 자리에서 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장흥 연곡서원은 숙종 24년(1698)에 세웠으며 숙종 42년(1716) 민정중의 동생인 민유중을 추가로 모셨다. 영조 2년(1726)에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연곡'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그 뒤 점차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 탐방 2015.01.29

전남 해남. 윤두서 고택(古宅)

윤두서(尹斗緖) 고택 전경. 중요민속문화재 제232호.  소재지: 전남 해남군 현산면 백포길 122.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인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가 살던 집이라고 한다.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며,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자이다. 윤선도가 풍수지리상 명당터에 이 집을 지었으나, 바닷바람이 심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증손인 윤두서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지은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 11년(1670)에 지어 후에 윤두서가 살게 되었고 순조 11년(1811)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지을 당시에는 문간채와 사랑채 등 48칸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와 곳간채· 헛간· 사당만이 남아있다. ㄷ자형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

문화재 탐방 2015.01.28

전남 해남. 정운 충신각(鄭運 忠臣閣) 전남 기념물 제76호.

정운 충신각 입비(鄭運 忠臣閣 立碑) 전라남도 기념물 제76호.   전남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산 19.   임진왜란 때 충신인 충장공 정운 장군의 공(功)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각(閣)이다. 충장공 정운 장군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선조 3년(1570)에 과거에 급제하여 웅천현감 등을 지냈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큰공을 세웠으며 9월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 각(閣)은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정충보국의 사적 입석.   하동 정씨 직장공파에서 세운 정충보국의 사적 입석 후면.   정운 충신각 입구.   정운 충신각 안내문.   충절사(忠節祠)   충절사 내부. 입구에 문..

문화재 탐방 2015.01.27

전남 해남. 윤탁 가옥(尹鐸 家屋)

해남 윤탁 가옥.중요민속문화재 제153호.  전남 해남군 현산면 초호길 43 (초호리)   윤탁 가옥은 나지막한 야산을 뒤로하고 앞으로 들이 펼쳐진 남향 땅에 자리하고 있는 기와집이다. 안채에서 발견된 기록으로 보아 광무 10년(1906)에 지었음을 알 수 있고, 사랑채와 별당채도 이 시기에 지었다고 한다. 'ㄱ'자형의 문간채, 안채, 별당채와 '一'자형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동네길과 이어진 낮은 터에 '一'자형 대문간채가 있고, 대문간을 들어서면 문간마당에서 곧바로 사랑마당에 이르게 된다. 문간마당보다 높은 터에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랑 뒷쪽으로 중문간채가 있다. 그 안에 안채와 별당채가 마주 보고 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ㄱ'자로 꺾인 평면 중 남쪽 ..

문화재 탐방 2015.01.24

전남 해남. 성내리 수성송(守城松)

수성송(守城松)소재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해남군청)천연기념물 제430호. 해남군청 청사 앞마당에 있는 수성송은 곰솔로서 수령은 약4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7m이고, 가슴높이의 둘레는 3.38m이다. 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이라고 하고,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보통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 색인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굵은 외줄기에 가지가 여러 개로 나뉘어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수성송(守城松)이라는 이름은 조선 명종 10년(1555)에 왜선 60여 척이 지금의 남창리와 완도군의 달도에 침략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해남 현감 변협(邊協)이 ..

문화재 탐방 2015.01.22

전남 해남. 황조별묘(黃朝別廟)

황조별묘 삼문. 해남군 향토문화유적 제10호.  소재지: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381-1.신주소: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길 96-2.    황조별묘(黃朝別廟)는 명나라 수군도독으로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구원군으로 왔던 진린(陳璘)장군과 그 후손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진린(陳璘)장군은 군선 500여척과 병사 5.000을 거느리고 고금도를 비롯 녹도, 금당도 등지에서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왜군을 상대로 싸웠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하게되자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제문(祭文)을 짓기도 하였다. 또 이곳은 진린의 손자 진영소(陳永素:1644~?)가 명나라가 멸망하게 되자, 진린의 유지에 따라 중국의 광주로부터 관왕묘(關王廟)가 있는 거금도에 이주하게 된다. 그 후 진영소의 아들 석권과 유권은..

문화재 탐방 2015.01.21

전남 해남. 방춘정(芳春亭)

해남 방춘정(芳春亭) 정문.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09호.  전남 해남군 계곡면 방춘길 148.   방춘정(芳春亭)은 순천 김씨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던 정자로서 건물 내부에서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조선 고종 8년(1871)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나, 양쪽에 지붕을 덧달고 그 아래로 1칸씩 방을 만들어서 앞면이 5칸 형식으로 되어있다. 해남 방춘정(芳春亭)은 원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옛 격식을 갖추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 우리지역 문화재 -   해남 방춘정 안내문.   순천 김씨 삼상 사적비.順天 金氏 三相 史蹟碑.  방춘정 편액. 바로 옆에 방춘서원과 삼상사의 편액도 보이는데 과거에 불리던 당우의 이름이라 한다.   방춘정 ..

문화재 탐방 2015.01.20

전남 무안. 용정리 곰솔

무안 용정리 곰솔.소재지 : 전남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35-9번지(월두마을) 전라남도 기념물 제176호.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센 까닭에 곰솔이라고 부르며,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부른다.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나 방조림으로 많이 심는다. 무안 용정리 곰솔은 수령이 약 300년으로 둘레가 큰 줄기는 3.6m, 작은 줄기는 2.3m로 해안가에서 자라고 있다. 밑부분의 가지 일부가 죽은 것 외에는 나무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며, 나무의 모습도 아름답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여겨 매년 산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무안 용정리의 곰솔은 오랜 세월동안 ..

문화재 탐방 2015.01.19

전남 무안. 석용리 곰솔

무안 석용리 곰솔.소재지 :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용리 843번지.  신주소 : 전남 무안군 해제면 감정길 2.전라남도 기념물 제175호.  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센 까닭에 곰솔이라고 부르며,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부른다.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나 방조림으로 많이 심는다. 무안 석용리 곰솔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1m이고, 둘레는 3.1m이다. 땅에서 2.5m되는 부분에서 큰 가지가 발달하였으며, 나무의 상태는 다소 좋지 못하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여겨 해마다 2월 1일에 산신에게 드리는 당산제(堂山祭)를 지내고 있다. 무안 석용리..

문화재 탐방 2015.01.16

전남 무안. 총지사지 석장승(摠持寺址 石長승)

무안 총지사지 석장승(左: 남장승과 右: 여장승) 전남 민속문화재 제23호.  전남 무안군 몽탄면 대치리 542-1번지.     총지사 터 입구 양옆에 나란히 서있는 2기의 돌장승으로, 절의 영역표시 기능과 더불어 경내에서의 수렵· 어로 등의 금지를 알리며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상의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거대한 화강석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려 아무런 조각이 없는 민둥머리와 이마, 커다란 왕방울 눈, 우뚝 솟은 주먹코와 작은 입이 조각되어 있다. 두 장승의 모습이 거의 비슷하나, 남장승은 외수염을 하나 더 조각해 두었다. 장승의 앞에는 각각 넓직한 판돌의 제단이 놓여 있으나, 장승과 관련된 의례는 전하지 않고, 다만 할머니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소원을 비는 곳이라 한다.  조선 현종 7년(1666)..

문화재 탐방 2015.01.13